brunch

매거진 서향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Garden Aug 09. 2023

항아리는 혼자 서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 혼자 서있는 게 아닙니다.

항아리는 혼자 서있는 게 아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할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작품을 보는 일은 새로운 영감을 주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역사를 품고 있는 물건을 보는 일은 지금은 나와 분리된 먼 날의 일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 일이 된다. 


  리움 미술관을 가서 가장 크게 얻은 수확은 바로 도자기의 기품. 도자기의 촉감이었다. 지금은 그 덕분에 도자기를 찾아보려고 하고, 도자기 만드는 수업을 수강하려고 한다. 눈과 마음에만 담기에 아쉬운 작품은 사진으로 담아 왔다. 정리를 하다 자세히 보니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항아리를 지지하고 있는 줄. 

  도자기는 몇 가닥의 줄이 단단하게 붙잡고 있었다. 거기다 항아리 아래에는 금속으로 만든 지지대가 있다. 줄을 보고 있으니, 흐릿하게 기억 너머에 있던 기사 하나도 떠올랐다.  "'낚싯줄'이 국립경주박물관 유물들을 지켜냈다." 지역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경주에 강한 지진이 지나갔던 순간, 낚싯줄이 유물들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고 한다. 유물을 지켜내고, 문제없이 넘어갔다는 기사.


  요즘 난 꿈을 꾸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 언젠가는 글로 살아가는 꿈. 참 깨지기 쉽다. 약간의 현실의 진동이 온다고 하더라도 홀로 서있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꿈을 폐기해야만 할까? 내 꿈을 박물관처럼 유리 뒤에 곱게 넣어두고만 있다가 다시 보니 나도 알지 못한 줄이 촘촘히 묶여 있다.


  매일 쓰는 글을 읽고 퇴고를 해주는 여자친구라는 단단한 줄.

  내 글은 이미 충분히 멋진 빛을 내고 있다고 말하는 독서서점 대표인 동생이라는 유연한 줄.

  말하지 않아도 매일 내 글을 읽고 좋다는 표시를 남겨주시는 부모님이라는 따듯한 줄.

  짧은 소설을 언제나 기다려 주시는 책친구라는 튼튼한 줄.

  잊지 않고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라는 무서운 줄.


  내 꿈은 항아리처럼 세월을 먹고 자라난다. 작품이 쌓이고, 시간이 퇴적되어야 빛이 난다. 시간이 지나가는 중에는 내 항아리를 깨는 위기가 올 것이다. 위기를 피할 수 없다. 내가 받아들여야 할 일들이다. 꿈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나 혼자 하는 일은 아니다. 누군가 지지하고, 보이지 않는 줄처럼 내 꿈을 지키고 있다. 


  항아리도, 나도 홀로 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군가 단단히 지켜주고 있다. 따스한 말 한마디가, 글을 잘 읽었다고 표시하는 일 모두가 나에게는 보이지 않던 줄이었다. 내 꿈이 조금 더 커지고, 내 꿈이 조금 더 단단해지면 이 줄들은 의미가 없을까?  아니다. 더 큰 꿈을 깨지지 않게 보호해야 할 필요는 여전할 테다. 


  사진을 다 정리했다. 최근 컵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물컵. 내 꿈처럼 멀리 있고 조금 작지만, 손에 착 붙은 도자기를 하나 주문해 본다.



리움미술관 도자기.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관성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