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Garden Aug 24. 2023

기술자 20%, 글 쓰는 사람 80%가 본 오펜하이머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기술자 20%, 글 쓰는 사람 80%가 본 <오펜하이머>


  난 실화 영화를 좋아한다. 진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연극적으로 올 때, 묘한 마음이 든다. 그들의 고뇌를 느끼게 하고, 그들의 기쁨에 박수를 칠 수 있다. 또, 실화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그들의 이야기를 촘촘히 알고 싶어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최근 <오펜하이머>를 봤다. 영화에 해시태그를 달아볼까?


  #과학, #크리스토퍼_놀란_감독, #제2차 세계대전, #핵, #맨해튼_프로젝트


   안 볼 수가 없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 <다크나이트> 팬이고, 과학에도 관심이 있으며, 최근 핵과 전쟁의 무서움과 원리에 대한 유튜브를 봤다.


  영화에는 노벨상 수상자는 기본이고, 과학자들의 과학자인 분들이 나온다. 양자역학을 연 닐스 보어, 불확정성 원리로 알려진 하이젠베르크, 양자 컴퓨터의 기초 작동원리를 고안한 천재 중에 천제인 리처드 파인만, 자신의 이름으로 물리학 앞과 뒤를 구분할 정도의 족적을 남긴 알버트 아인슈타인까지. 그들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공부를 오래 했다. 운이 좋아 석사를 하고, 박사까지 했다. 공부를 오래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고, 존경하는 스승님까지 있으니, 삼대가 덕을 쌓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나는 그들처럼 과학자일까? 예전부터 난 날 과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번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강하게 느꼈다. 그들이 진정한 과학자다.


  난 뭘까? 과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실현하는 공학자일까? 난 날 기술자라고 부르고 싶다. 현실에서 그들이 만든 이론이 공학자를 거쳐 실제 운영이 잘 되도록 하는 기술자. 이들 간에 높낮이는 없다. 다만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그럼 공학자 조금에 기술자가 대부분인 내가 본 <오펜하이머>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핵분열 반응을 처음 본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화에 짧게 나온다. 모든 물리학자는 엄청난 무기가 되리라 생각할 거라고 말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모두에서 전쟁 중이다. 핵분열은 에너지로 가는 것이 아니다, 무기로 생각이 흘러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만드는 이들도 고민이 많았을 테다. 하지만, 국가가 위기에 쳐했다고 생각했으니, 그들은 모였고, 만들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말을 참 안 듣는 이들이다. 그들이 과학을 탐구하고 눈으로 보고 자신의 손으로 계산해야 믿는다. 하나의 답에 도달하지만, 가는 과정이 다르니, 말이 많다. 이른바 과학자들이 모인 (물론 여기에는 현장에 계시는 분들도 많이 오신다) 학회를 상상해 보자. 다들 자신의 말을 하고 합리적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을 하는 상황이 일어날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반박할 자료를 찾고 (하나로 확정된 이론이 아니라면 반대 이론은 늘 있다),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다툰다. 그런 과학자들이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리 없다.


  또 그들은 자신이 만든 생각, 증거, 계산을 공개한다. 혹시나 틀린 점을 찾는 이유도 있고, 콜로세움의 전투를 거쳐 자신이 말한 이론을 단단하게 하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기는 보안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게 하니, 과학자의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 겨우겨우 만들었다. 오랜 기간 거기다 막대한 돈까지.


  인상 깊었던 장면은 '트리니티 시험'이다. 폭탄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확인해야 한다.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 그들은 실험 장소를 정했고, 안정지역로 사람들은 옮겨두었다. 실험 결과를 봐야 하는 이들은 안전거리 밖에서 대기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이들이다. 그들이 핵폭발을 보는 자세는 어땠을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순간, 그들은 내기를 한다. TNT(니트로 글리세린)를 기준으로 폭발력이 얼마나 나올지 각기 이야기한다. 1 천 킬로 TNT라고 하기도 하고, 2 천 킬로 TNT라고 하기도 한다. 비는 잦아들고 폭발을 마주해야 할 순간이 왔다. 한 명은 선크림을 바르고 준비를 하며, 어떤 이들은 차 안에 들어가 폭발이 만들어낸 강한 빛을 막아줄 안경을 벗어던진다. 곁에 있는 다른 과학자가 안경을 쓰라고 하니, 차에 있는 유리가 UV를 막아주니 필요 없다고 한다.


  자기들도 몰랐다. 버섯구름은 12 km까지 치솟았고, 40 km 뒤에서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무기를 완성되었고 군대를 가져갔다. 핵폭탄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배달되었고,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오펜하이머는 핵폭탄 발사 버튼을 누른 (이때는 비행기로 발사했기에 버튼이 아니라 문서로 지시했다고 한다. 거기다, 무기의 위력을 몰랐기 때문일까? 대통령이 아니라 별 3개인 장군이 투하 문서에 최종 결제를 했다고 한다)


  주인공인 오펜하이머는 대통령과 만난다.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대통령은 당신 책임이 아니라 누른 내 책임이라고 하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마치, 과학자인 너희들이 정치인인 내가 하는 권리와 책임을 넘보느냐는 식으로. 뒤로는 오펜하이머가 분열하여 폭발한다. 자신이 만든 핵분열의 피해자가 되어간다.




  영화를 다른 어떤 매체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압도하는 소리, 영상이 내 마음에 도착을 콱하고 찍어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생각이 높게 솟아올랐다. 보호안경을 쓰고 휴대폰 메모지를 켜 생각의 단상을 남겼다.


  영화감독이 글을 쓴 작가가 의도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메시지는 내 마음에 남았다. 그들의 생각한 의도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들이 의도한 방향은 아닐지라도, 내 정원에 도착한 메모는 강한 분열이 시작되어 에너지를 만들어 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이들도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몰랐다. 방사능을 몰랐기에 선크림을 바르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유리가 UV를 막아준다고 했을 테다. 우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 하는 선택이 나중에 보니,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었는지,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 훗날 꽤 괜찮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선택의 잘되고 못되고는 똑똑한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최고 물리학자들도 자신이 한 선택의 끝을 몰랐으니.


  영화가 끝났는데, 난 메모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일어서서 날 보던 여자친구는 피식 웃으며 가자고 날 이끈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생각의 분열이 일어나 에너지가 마음을 뜨겁게 한다. 한동안 영화 <오펜하이머>가 남긴 생각을 관찰할 생각이다.



"We knew the world would not be the same. Few people laughed, few people cried, most people were silent. I remembered the line from the Hindu scripture, the Bhagavad-Gita. Vishnu is trying to persuade the Prince that he should do his duty and to impress him takes on his multi-armed form and says,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I suppose we all thought that, one way or another."


"우리는 세상이 예전과 다르게 나아갈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지만, 대다수는 침묵에 잠겼다. 난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비슈뉴는 왕자가 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그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여러 팔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는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파괴의 신이 되었도다."아마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것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기술자 20%, 글 쓰는 사람 80%가 본 오펜하이머


이전 09화 넘어져도 10초라는 쉴 기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