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향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Garden Oct 10. 2023

명절에 우리 동네 주차장이 붐비는 이유.

나이가 지긋한 동네.

명절에 우리 동네 주차장이 붐비는 이유.


  명절이 되면, 우리 동네 주차장은 가득 찬다. 평소에는? 서울의 주차난은 늘 딴 나라 이야기로 들렸을 정도로 넉넉하다. 추석 저녁, 동생 가게에 갈 일이 생겼다. 겨우 주차한 자리에서 나갔다. 하늘은 분홍색 와 보라색이 섞인 묘한 색을 내며 날 맞이했다. 내가 빼놓은 자리에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 주차를 하셨다. 돌고 돌아 먼 곳에다 주차했다. 다른 동을 거쳐, 집으로 향하니 평소에 볼 수 없는 모습이 눈, 코, 귀를 잡아 끈다. 


  창문이 열려있고, 하하 호호 웃는 소리가 주차장으로 넘어 들어왔다. 좌우를 살피니, 고소한 냄새가 함께 온다. 어디에는 갈비찜 냄새, 어디에는 고소한 튀김 냄새. 발을 옮긴다. 따스한 우리 집 앞에 서니, 1층 어르신 가족 모습이 보인다. 며느리, 아들, 딸, 손자, 손녀. 평소에 조용하던 그곳이 왁자지껄하다. 아! 명절에 우리 동네 주차장이 붐비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동네에도 나이가 있을까? 있다. 나이가 지긋한 동네가 있고, 젊은 동네가 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 동네는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이가 묵직한 동네다. 우리 동네 모습을 되짚어 보게 된다. 주차장도, 오두막도, 관리실 모습이 두둥실 머리에 떠다닌다.


  평소에는 참 한적하다. 수도권에 있는 동네가 맞을까 싶을 정도다. 거기다, 인사를 가볍게 나누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어떤 날은 안부가 길어져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가끔은 부침개를 구우시고는 주차하는 나를 부르시기도 한다. 괜찮다면 막걸리도 한잔 하라며 권하는 일도 있다.


  대부분 은퇴를 하시고, 느긋한 삶을 지내시는 분들이 사신다. 사람이 동네를 만들고, 만들어진 동네가 사람을 부른다. 자식들은 모두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다. 그분들은 기다리며, 서로를 의지하는 동네. 나이가 지긋한 동네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은 동네를 만나러 온다. 추석이라는 긴 연휴가 가족과 이야기 나누는 기회라 생각하며 말이다. 


  평소에 한갓진 동네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 아니면 반작용이라고 할까? 한 번에 왁자지껄함에 쏟아진다. 1층 어르신 집에 짧게 서있으니 생각이 간질거린다. 재채기하듯, 떠오르지 않던 문장이 휙 하고 나왔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Count Lev Nikolayevich Tolstoy).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이 그를 설명하길, "사실적인 소설의 거장이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인 러시아 작가."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이 문장 뒤에는 함께 따라오는 법칙이 있는데, 바로 안나 카레니나 법칙(Anna Karenina principle)이다. 뜻을 보면, "성공하기 위해선 여러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고, 만약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맞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느끼는 안온함이 모두 어려운 조건을 뚫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 이들의 동네라는 뜻 같다. 


  동네를 가득 채운 차. 평소에 넉넉하던 주차장은 행복을 몰고 온 분들로 가득한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삑삑 소리를 내며 문을 여니, 고소한 냄새가 훅 끼쳐온다. 중간 문을 열니,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기다린다. 뒤이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네에서 들려오던 왁자지껄한 행복의 소리에 우리 가족도 하나 더해 본다. 주자창이 붐비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



톨스토이.


매거진의 이전글 손짓 하나가 주차장에서 웃음을 만든 까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