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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Oct 21. 2023

닫힌 책에 노크하다.

불행마저 겪어낼 사랑을 하려는 거야. 

닫힌 책에 노크하다.


  책을 읽다 보면, 일찍 만나면 좋았을 싶은 책들이 있다. 과거에 어렵게 견디고 있는 나에게 위로를 주는 책이 있기도 하고, 고민하던 문제의 실마리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최근에 만났다. 예전의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푸른색의 책에 노크를 했다. 삐걱 소리를 내며 책이 열린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가진 이가 가볍게 목례하고, 이름을 묻는다. 기억에 새기려는지 낮게 읊조린다.


  "이름은 무슨 뜻이에요?"


  처음 듣는 질문에 당황했다. 준비하지 않는 질문을 받은 면접자처럼 우물거리다 답을 했다.


  "하나는 별이 빛나는 정원, 다른 하나는 서쪽 방향에서 빛나는 별이에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따라 들어오라고 한다. 빛 하나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둔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더듬거리며 한 발짝 디디니, 앞선 사람이 자그마한 불을 켠다. 빛이 어둠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세월을 한 껏 받아낸 돌로 된 의자가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앉으니, 따스한 말소리가 들린다.


 "저는 리하예요. 새길 리에 은하수 하. 은하수를 새긴다는 의미예요. 수많은 별을 만들며 살아가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에요."(page 51) 잠시 쉬더니 말을 이어간다. "닫힌 책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문이 닫혀 있는 책이요. 닫힌 책은 자신을 읽을 수 있는 자를 선택한대요." (page 301) 낯선 이가 주는 따스한 덕분일까? 닫혀 있던 책이 내 마음을 연 덕분일까? 나에게 책을 주고 싶던 시간으로 휘리릭 날아갔다.


  20대 초 반, 난 결혼 생각이 없었다. 가정을 꾸리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가족이 된다는 건 한 배를 타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까? 바다라는 거친 세상에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배를 타고 나간다는 모습이 무서웠다. 특히, 내가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실패할 수 있다는 공포가 더해졌다. 잘못된 선택이 배를 좌초시키고, 가라앉는 배에서 모두 비참하게 지내는 모습이 마음을 섬뜩하게 했다. 내 선택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고통받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마음이 꺾여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싫었다.


  일이 잘못되는 건 내 영역이 아닌 경우도 많다. 예측할 수 없는 요인이 배를 침몰시킬 수도 있다. 내 곁에 있는 이들이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배를 띄웠고, 아무도 함께 태우지 않았다. 결심했다. 내가 한 결정은 나 혼자 견디겠노라고. 난 각진 마음을 예리하게 만들어 배 앞에 줄을 쫙 긋고는 아무도 타지 못하게 했다.


  말을 멈췄다. 리하가 바통을 받아 말을 이어간다.  "사랑과 불행은 한 몸으로 뒤엉켜 있어요." (page 206) 불행한 일이 겁난다면, 사랑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슬프게 할 수 없지만,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이라며, 내 마음을 꾹 찔렀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냐며, 리하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을 가르친 모든 것을 겪고 나서야 얻게 된 깨달음의 과정.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때로는 얼굴을 찌푸렸으며, 마지막에는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커졌다. 긴 이야기를 거두고 리하가 마무리한다.  


  "저는 불행마저도 겪어낼 사랑을 했어요." (Page 331)


  리하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며, 다음은 미얀마에서 수행한 이야기라고 한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나갈 채비를 했다. 책을 나서는 나에게 리하가 말을 건넨다. 


  "우릴 같은 모어를 가진 것 같아요. 다음에 꼭 봐요. 우리."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책에서 나온 곳에는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들 들어 서쪽 하늘에서 별이 반짝인다. 그 아래에는 아담한 정원이 하나 있다. 남들과 구분 짓는 내 이름인가 보다. 가서 기다린다. 다음에 올 닫힌 책을. 그 책이 오면 다시 문을 두드려야겠다. 과거의 나에게 필요한 책일 수도, 아니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이 오길 기다려 본다.



추천드리는 분.

    - 바르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

        *바르는 사이, 도는 걸려있다는 뜻으로 죽음과 탄생 사이.

    - 리하의 깨달음의 과정이 궁금하신 분.

    -  닫힌 책이 궁금하신 분.


#바르도 #바르도 1 #정령조각가 #리민 #소설 #한국소설 #광인


바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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