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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Oct 26. 2023

철학자가 필요한 이유.

선물처럼 온 책.

철학자가 필요한 이유.


  책을 고를 때, 정보를 찾아보는 편이다. 분류는 어디로 되어 있는지, 작가는 누구인지. 이번에는 아무런 지식 없이 책을 받아 들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라는 낯선 작가의 이름,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이라는 내용을 바로 알아차릴 수 없는 제목까지. 띠지를 아래로 빼고, 책을 펼쳤다. 몇 장을 넘기자 알게 되었다. 낮게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여긴 내가 잊었고, 잃어버렸던 철학의 세계구나."


  철학을 담은 책을 게걸스럽게 읽어 내려간 적이 있다. 그때, 난 많이 흔들렸고 답을 찾고 싶었다. 고향이 유교문화가 강한 곳이기 덕분일까? 시작은 논어였다.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을 듣고 마음으로 외고 있으니, 곁에는 맹자가 계셨다. 그분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궁리하고 있으니, 한 발 떨어져 계신 두 분이 가까이 오셨다. 노자와 장자. 


  그분들과 긴 시간 함께 했고, 입시라는 소용돌이에 들어가서는 쉬었다. 다시 철학을 만난 건 대학교 때다. 교양에서 서양철학 마당에 들어섰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소개받았다. 시대도 어긋나고, 장소도 다르지만 세계의 선생님들은 비슷한 질문을 받으셨다. 답은 서로 달랐지만. 많은 분들을 만났고, 나름의 고민을 했다. 난 답을 찾았을까? 찾지 못했다. 바쁜 삶이 철학을 옆에다 치우게 했다. 주어진 하루에 집중하며 흔들린 나를 내버려 뒀다. 잊었고, 잃었다.


  동굴에 서있다. 내 몸은 단단히 묶여있다. 고개는 옆으로 한치도 돌릴 수 없다. 등 뒤에서 빛이 뺨을 지나간다. 시선이 흐릿해지더니, 그림자가 보인다. 옆에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짧은소리로 그림자가 무엇인지 소리친다. 누군가는 말, 누군가는 얼룩말이라고 한다. 자신이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과 내가 직접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싸운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질끈 감으니, 어깨를 친다. 눈을 떴지만 나를 부른 이를 볼 수는 없다. 


  "누구세요?"


  "아 죄송합니다." 앞으로 오더니, 말을 이어간다. "전 철학자입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내 눈앞에 둔다. "진리와 선을 관조할 수 있는 소수는 갇혀 있는 자들에게로 돌아가 미덕을 가르쳐야 한다. 이 선택받은 소수가 바로 철학자다. 철학자들은 "공통의 거처"로 돌아가 동족들에게 빛을 전한다 (Page 98-99)"


  "저는 빛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오랜만이 듣는 단어인 '철학'에 한번 멈칫하고,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소리에 다시 한번 멈칫했다. 이상한 사람 아닌가 라는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옅은 웃음을 짓는다.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톱을 꺼내더니, 날 묶고 있는 줄을 능숙하게 잘라낸다.


  옆에서는 여전히 그림자를 보며, 말, 얼룩말 논쟁을 시끄럽게 이어가고 있다. 풀려난 나를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그는 손으로 내 눈을 가리고, 몸을 천천히 돌린다. 우선을 아래를 보라고 하며, 빛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2년 전 우리가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격리를 당하는 우리. 서로를 만나고 살던 시대에서 정당한 이유로 유폐된 우리 모습이 흘러간다. 고개를 조금 더 들어보니, 휴대전화로 세상을 불러드리고, 온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내가 보였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고개를 바짝 들었다. 쨍한 빛이 눈을 잠시 멀게 했다. 꽈당. 넘어졌다. 옆에 있던 그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팔에 의지한 채 걸었다. 삐걱 거리는 문을 연다. 


  눈이 다시 돌 오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한다. 흐릿하게 보이는 시선 너머에는 작은 방으로 보인다. 그는 혼자 박수를 치더니, 당신 혼자 할 수 있다고 한다. 눈이 돌아오면 탁자 위에 있는 종이를 읽어보라고 하며 나갔다. 눈을 다시 감았다. 흐릿하게 보이던 그림자도 없는 곳에 홀로 앉았다. 명상인지 졸음인이 어디 중간을 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떴다.


  어두운 방에 희미한 촛불만이 춤을 추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종이를 찾았다. 


  "일반적으로 방에는 두 가지 운명이 있다. 자율적 삶의 서막이 되든가 숨 막히는 방구석으로 전락하든가 둘 중 하나다. (page 113~114)"


  방을 나서기에는 아직 두렵다. 자그마한 창을 열어본다. 종이 한 장이 떨어진다. 


  "바람을 초대할 수는 없지만 창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지도 크리슈나무르티 (page 237)"  


  창문 너머에는 빛이 강렬하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그림자를 보며 논쟁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빛도 은은하게 들어오는 창문을 반쯤 열어둔다. 철학자가 남겨둔, 두 장의 종이를 마음에 새겨둔다. 곧 나가야 한다. 문 앞에 서서 자율적 삶의 서막이 되는 이곳을 돌아본다. 질문이 하나 울컥 거리며 나온다. 


  "언젠가 나도 그들에게 빛을 안내하는 자가 될까?"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추천드리는 분.

    - 팬데믹을 거치며 변화한 우리의 모습이 궁금하신 분.

    - 철학자의 사유가 궁금하신 분.

    - 집에서 나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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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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