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넓게 하는 책, 시선을 시원하게 하는 책.
무슨 재미로 살아?
가끔 듣는 말이 있다. "넌 무슨 재미로 살아?" 이 질문을 하는 이들은 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거나, 몇 가지 질문이 지난 뒤에 도착하는 마지막 질문이다. 드물지만, 질문이라는 변장을 하고 비아냥을 숨기는 문장이기도 하다. 마지막 질문 앞에 줄을 선 질문은 보통 다음과 같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술도 잘 먹지 않으며, 노래를 부르는 일도 즐기지 않는다."
그럼 무슨 일을 하느냐는 말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는 답으로 돌려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거나, 약간의 웃음을 머금고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하나는 거짓말 말고 진실을 내어놓으라고, 아니면 곧장 자신이 했던 질문을 다시 되뇐다. "넌 무슨 재미로 살아?"
그럼 무슨 답을 해야 할지 찾지 못하고, 웃으며 "그냥 그렇게 사는 가야"라며 얼버무리고 만다. 나만 받은 질문은 아닌가 보다. 독서모임 책 친구들도 조금 다른 문장이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질문을 받아 든 모양이다. 곰곰 생각을 해봤다. 추궁에 무슨 답을 해야 할까? 마음이 뿌옇게 되더니, 날카로운 문장들이 날아든다.
'담배를 피우는 일, 술을 마시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나요?'
물론 이렇게 말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답을 할지 궁금하긴 하다. 그들의 답을 당장 들을 수 없으니, 내 말을 먼저 해보려 한다. 무슨 재미로 살아? 에서 '무슨'에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책을 크게 나눠 볼까? 문학과 비문학. 소설은 내가 갈 수 없는 곳까지 단박에 날아가게 한다. 소설은 과거의 역사 한가운데로 보내기도 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로 나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그들이 한 고민을 함께하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사건과 사람과의 관계를 체험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현실에서는 이 모든 일이 공감 능력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깝깝하고 단박에 풀 수 없는 불안에서 잠시 떠날 수도 있다. 시는 어떤까? 시인의 마음을 연속 증류해 남은 진한 단어와 문장이 마음으로 훅 끼쳐 온다. 받고 나면 내가 보지 못한 시선을 짚어주신다. 나라는 사람을 넓게 만드는 기회다.
비문학으로 가볼까? 인류의 탄생은 물론이고 우주의 탄생까지 갈 수 있다. 우리 옆에 있는 휴대전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볼 수 있고, 나도 모르는 나를 알 수 있는 심리학도 있다. 뉴스에서 부유하는 숫자들의 의미,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는 이들이 하는 말의 뜻을 짚을 수 있다. 때로는 내가 보는 정보들의 뒷 면으로 안내할 수 있다. 내 지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같은 사건에서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 탁 트인 시선으로 안내한다.
공감이 확장되고,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알아가는 일, 세상이 돌아가는 일부를 알 뿐만 아니라, 밤하늘에 볼 수 있는 별의 의미를 알게 된다. 넓어지는 마음과 시원해진 눈은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메리 워틀리 몬터규라는 작가이자 시인이 하셨던 말에 가닿았다.
"독서만큼 값싼 오락도, 독서만큼 재미가 오래가는 것도 없다."
(No entertainment is so cheap as reading, nor any pleasure so lasting. - Mary Wortley Montagu)
적어두고 보니, 책 읽는 일이 다른 어떤 일 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누군가 무슨 재미로 산다는 질문에 적어둔 답을 꺼내기에는 더 어려워졌다. 다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책 친구들에게는 들려주고 싶다. 우리 무슨 재미로 사냐며 묻는 이들에게 주눅 들지 말자고. 독서모임이 곧이다. 온갖 핑계로 뒤로 밀어둔 책을 가장 앞에 두고 펼친다. 이번 책은 어떤 세계로 나를 안내할까?
마음을 뿌옇게 하던 생각들이 가라앉았다. 질문을 받기 전에 그들에게 질문을 먼저 해야겠다.
"그대들은 무슨 재미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