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가 평가하도록 둘 다 남겨놓아라.
두 개의 시선이 담긴 조선왕조실록.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많은 기록물 중에 대표주자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가 아닐까?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활동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분의 기록으로 1,893권 888 책이다. 지금의 책을 새는 방법과는 다르니, 원고지로 옮겨 놓으면 눈에 확연하게 들어온다. 63 빌딩 세배의 높이다. 매일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 걸린다.
*고종부터 순종까지의 실록은 일제가 손을 대는 바람에 많이 구부러져 조선왕조실록에서 빼낸다고 한다.
승정원일기는 어떨까? 승정원은 왕의 말을 출납하고, 행동을 모두 기록한 책이다. 지금으로 보면 대통령비서실 기록물이라고 하면 비슷하다. 양이 압도적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양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물론 임진왜란, 이괄의 난, 불의의 호재로 소실되었지만, 남아있는 287년 치만 보아도, 글자 수만 2억 4,250만 자로 조선왕조실록의 글자 수인 4,964만 자를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이 정도면 기록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그 영향은 어디 가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으니.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마치, 명탐정 코난처럼 '띵'하는 소리와 함께. 실록은 왕의 기록으로 왕의 묘호와 함께 하나로 묶인다. 그런데, 같은 묘호에 두 개의 실록이 보인다.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광해군중초본-광해군정초본
헌종실록-헌종개수실록
숙종실록-숙종보궐정오
실록은 엄격한 절차를 밟아 작성된다. 사초라고 해서, 메모에서부터 길게 쓴 말씀까지 모여있는 글이라고 보면 된다. 기록을 당하는(?) 왕이 돌아가시고 나면 편찬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제는 사초를 보며 넣어야 할 기록과 빼야 할 기록을 나눈다. 마지막으로 사관의 생각까지 넣는다. 가장 중요한 건, 사초를 작성하는 사관에서부터, 편찬하는 모든 사람들을 왕도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들어진 실록은 비공개로 누구도 볼 수 없게 한다. 왕이 선례를 만들었고, 뒤따르는 왕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다. 보는 순간, 조선왕조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되고, 벌떼처럼 신하들이 들고일어날 테다. 물론 있다. 연산군이 자신의 기록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록 그것도 사초를 신하가 필사해 온 것으로 봤다고 한다. 그렇게 봤음에도 폭군으로 찍혀, 후세 모든 사람들이 잘근잘근 씹어낸다.
어려운 절차를 거쳐 만든 실록이 두 개나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한발 들어가 보니, 이유에 놀라웠고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선조실록과 수정실록을 볼까? 이는 시대가 바뀌고, 권력이 이동하니 다시 써야 하는 여론이 강했던 모양이다. 40여분의 인물의 평가를 바꾸었고, 사건을 보는 시선을 다르게 했다. 물론 선조실록을 쓸 때, 강한 세력과 수정실록을 주도했던 세력이 바뀌긴 했다. 그래도 이상한 점은 바꿔었으면, 그전 기록을 어떻게 할까?
없애지 않았을까? 내가 남긴 기록이 옳다고 여기며 말이다. 그런데 두 개다 남아 내려오고 있다. 그들의 곁에서 생각을 해볼까? 없애보자. 그럼 후대 사람들은 무엇이라 생각했을까? "원하면 입맛대로 바꿀 수 있구나?" 아니면 "역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가? 그럼 이 기록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들은 고민을 치열하게 한 모양이다.
선조수정실록을 작성한 편찬위원장쯤 되시는 분이 하신 말이 전하고 있다.
"그 시말을 확인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니, 후대에 이 기록을 보는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채유후"
그래서 남겨두었다. 비교하며 읽고, 판단을 해보라고. 물론 마지막 글을 쓰며 생각했을 테다. 우리가 맞다고.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들이 맞는 점도 솎아내 찾고, 이전에 있던 실록과의 차이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기도 한다.
기록을 대하는 태도, 기록을 남기는 마음이 놀랍다. 나도 그분들처럼은 아니지만, 글을 쓴다. 기록을 남긴다. 때때로 멈칫하며 쓰는 글도 있다. 스스로를 검열하며, 이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가끔은 전에 적어둔 생각과 배치된 생각을 적어두고는 고민한다. 생각이 변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신념이라는 그늘 아래 두고 바뀐 내 마음을 고쳐 먹는 것이 좋은 일인가? 짧은 글 조각을 발행하는 일이 아직도 주저된다.
답은 없지만, 실록 편찬 위원장의 말씀을 되뇌어 본다. 맞다. 글을 쓰는 순간, 발행하고 공개하는 순간 그 글을 평가를 받는다. 내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는 내손을 떠나, 그들의 마음으로 읽히고 갈릴 것이다. 지금은 이상한 생각이 나중에 새로운 생각의 기초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이제는 읽는 분들이 평가하는 기록이 될 테다.
난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