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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Nov 22. 2023

불편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옥수수수염차를 아시나요?

소설과 연극을 비교할 대차대조표.

불편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옥수수수염차를 아시나요?


  얼마 전 연극을 봤다. <불편한 편의점>. 100만 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다. 그뿐일까? 미국을 비롯해 11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출되고 있는 책이다. 무척 재미있게 본 기억 덕분에 고민하지 않고 바로 예매를 했다. 소설은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무슨 쌀로 밥 짓는 이야기냐 할 수 있겠지만, 활자로만 이루어진 소설은 상상력의 제한을 걷어버린다. 


  소설가가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창문을 흔든다. 여긴 시베리아다."라고 쓰면, 우리는 바로 그곳에 서게 된다. "전차 소리가 삐익 울리고, 인력거가 곁을 지나간다. 어리둥절해 고개를 돌린다. 방금까지 방탈출을 하고 있었는데, 여긴 어디... 야?"라고 쓰면, 우린 소설가가 안내한 자리로 걸어간다. 다만, 읽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같은 책, 섬세한 묘사를 했더라도 비어있는 부분이 있다. 그땐 우리 상상이 메꾼다. 또, 상세하게 빠짐없이 묘사를 하면, 자칫 이야기가 지루해질 수 있다. 읽는 분들의 상상하는 자유를 앗아가기도 한다. 그 지점이 사람마다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된다. 글을 원작으로 가진 작품이 영상화된다든가, 연극으로 만들질 때,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어떤 모습을 그려낼까? 긴 장편 소설을 짧은 시간 안에 남김없이 넣었을까? 설레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소설과 연극을 맞춰보려고 기억을 되짚었고 마음에는 대차대조표가 만들어졌다. 시간을 기다렸고, 그날이 왔다. 남쪽에서 서울을 가로질러 강을 건너가는 일은 쉽지 않다. 결연한 각오를 하고, 일찍 갔다. 한산한 대학로를 걷고, 주린 배를 주전부리로 가볍게 채웠다. 


  극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서있는 사람들부터 심상치 않았다. 서늘한 바람을 이겨내려 팔짱을 꼭 끼고 기다렸다. 출근길 지하철인 마냥, 고개를 돌리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몸을 구겨 넣고, 7층에 도달하길 기다렸다. 문이 열리니,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훅 끼쳐 들어왔다. 단박에 이야기 속 Always 편의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대감은 올라갔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를 잡아 앉았다. 가득 찬 객석 노래가 은은히 퍼진다.


  기다리며 <불편한 편의점>을 떠올린다. 따듯하다. 난 따스한 이야기가 좋다. 각자의 상처를 내어 보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길 바라고, 결국에는 한 발로 위태롭게 서있는 이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걸어 나가는 이야기를 바란다. 갈등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무슨 재미냐고 할 수 있지만, 갈등은 현실에도 나에게 충분하니 상상의 세계에서만큼은 그러지 원하지 않는다. 다시 손에 들려있는 대차대조표를 꽉 쥐고 검사를 준비한다.


  연극은 좋았다. 소설에서 길게 이야기한 장면을 꾹 눌러 만드는 것도, 등장인물의 변화에 대한 순간을 노래로 풀어냈다. 소설과 연극의 대차대조표는 접어 마음 깊숙한 곳에 넣었다. 그들의 각색에 따라 걸어 다녔다. 새로운 불편한 편의점을 만났다. 불편한 편의점 독고씨도, 따스한 마음을 가진 편의점 사장님 염여사님, 톡톡 쏘지만 관심을 가져주는 오여사님이 다른 옷을 입고 내게 다가왔다. 


  <불편한 편의점>을 대표하는 메뉴가 있다. 참참참. 참이슬, 참깨라면, 참치마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가장이 저렴하게 하루를 마감하기 위한 만찬이다. 주인공 독고는 술을 먹는 그를 보며, 걱정을 슬쩍 담아 오지랖을 부린다. 참이슬을 빼고 옥수수수염차를 건넨다. 얼음 머리가 약간 보이게 따르면 위스키처럼 보이고, 세차게 흔들면 맥주로 보인다. 편의점이 참견으로 불편해졌지만, 마음을 뜨근하게 하는 메뉴가 된다. 


  그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가 즐거웠다. 내 상상과는 다른 모습도 재미있었다. 다만, 따스한 마음만은 온전하게 내게 전해졌다. 그것 만으로 충분했다. 배우가 내어 놓은 대사들이 그치고 사라졌지만, 마음에 작게 울린다. 내가 만든 상상과 다른 지점은 즐거운 해석으로 받아들였고, 같은 인물의 다른 모습이 즐거웠다. 


  두 가지를 해야겠다. 하나는 <불편한 편의점>을 다시 봐야겠다. 다른 하나는 바로 지금 한다. 참참에 옥수수수염차를 먹어야겠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편의점 속으로 걸어간다. 좋다. 소설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알게 되었다. 

  

참참에 옥수수 수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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