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철판요리를 먹으러 갔다. 인상에 남는 예술을 보여주신 사장님을 보여 글까지 썼던 곳이다(<철판요리 공연을 보고 예술을 먹었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진 예술을 볼 수 있는 철판요리 집은 크리스마스에 딱이었다. 예약을 3 주 전에 했지만, 늦은 시간을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곳에서 재잘거리고 있으니, 뒤에는 줄이 길게 늘어셨다.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주인장의 손짓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난번과 같은 단계를 거쳐 주문을 받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 끄트머리에 다다르고 맛난 음식이 우리 앞에 놓였다. 몇 조각을 먹고 있으니, '단골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단골. 난 단골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심야식당>이라는 드라마를 아실까? 식당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열리는 식당이 있다. 드라마의 시작은 늘 같은 말이 낮은 음성으로 들린다.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메뉴는 이것뿐. 하지만 마음대로 주문하면 가능한 만들어주는 게 나의 영업 방침이야.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 정도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심야식당이라고 부르지. 손님이 오냐고? 그게 꽤 많이 온다고.
온갖 삶들이 왔다 가며 자신만의 추억이 담긴 음식을 먹고 퇴장한다.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힘을 얻는다. 이야기 끝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우리 삶처럼 아릿한 끝만이 있다. 식당의 일원으로 가끔 마스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단골. 언제나 편안하게 배를 채우고, 마음을 채우는 자리. 집에 가기 싫은 날. 나를 편안하게 맞이할 가게.
내겐 정해놓고 가는 단골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안정치 못한 탓으로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난 타지에서 살았다. 토박이로 단골을 얻을 기회는 날아갔다. 고향과 대학은 멀어 떠나고는 자주 자지 못했다. 거기다, 부모님들도 고향에서 자리를 옮기니, 갈 일이 없었다.
대학시절에는 학교 앞에 있는 가게를 자주 갔다. 단골이라기보다는 그저 가깝고 싸다는 이유로 자주 갔다. 사장님들도 많은 학생들이 오가고, 졸업하고 신입생이 오는 과정을 자주 겪으니 친하지만 묘하게 거리가 느껴졌다. 대학원생이 되고 단골이 생길 법 했지만, 없었다. 점심과 저녁은 대충 때우기 일쑤고, 학생식당을 이용했으니, 단골은 없었다.
직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직장은 작아 언제나 불안했고, 이직이라는 마음이 크게 자라나니, 정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걱정이 늘 붙어 있으니, 마음을 안정시키는 단골을 만드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달그락 거리는 생각에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단골의 가게의 조건이 아니라, 단골을 가지는 이의 조건.
일정한 거주지와 오래도록 다닐 수 있는 직장 정도가 있어야 주위에서 단골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또, 내가 생각하는 단골은 단순히 내가 자주 가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심야식당처럼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가끔은 그를 통해 또 다른 이들과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여분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게는 아직 요원하다. 언제든 옮겨야 한다는 흔들리는 처지다. 언제든 자리를 옮겨 다시 자리를 잡고, 또다시 옮기는 일의 반복이니, 정을 주는 일도 두려운 모양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 자리를 옮길 텐데 라는 생각에 멈칫한다.
단골이 생긴다면, 마음의 틈이 생기는 방증이 되리라.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니, 다음 메뉴가 시작되었다. 열정적인 모습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마스터를 보며, 내게도 언젠가 그와 이야기 나누는 편안한 관계가 되는 단골이 될까?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