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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Jul 31. 2024

가면을 쓰며 배역을 연기하다 보니 나는 어디 갔을까?

글쓰기가 나를 찾는 방법일지도.

가면을 쓰며 배역을 연기하다 보니 나는 어디 갔을까?


  우린 가면을 쓴다. 날 것의 자신을 보인다면, 사회생활을 꽤나 삐걱거릴 테니 말이다. 역할이 부여되고, 세상이 바라는 행동을 고뇌하며 산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관계에 따라 변한다. 내가 가진 가면을 보자. 우선 난 장남으로 태어났다. 장소는 효와 충을 이야기하며, 사단 칠정을 읊는 곳이 고향이다. 21세기에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학창 시절에는 갓을 쓴 어르신이 종종 보이곤 했다.


  그때 난 착한 장남 역할을 했다. 버거워하진 않았다. 스며들었고, 오히려 충실했다. 논어 맹자를 공부했고, 대학 중용을 읽어나갔다. 시간이 흐르니, 학교라는 무대에 올랐다. 학생이라는 가면에는 여러 모양이 있었다. 주어진 일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생, 적당히 반항하는 학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깨닫고 준비하는 학생. 난 주어진 일을 적당히 하는 척하는 학생을 선택했다. 다른 이의 모범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대학을 갔고, 학생 가면과 더불어 새로 만난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 가면을 찾아야 했다. 적당히 유쾌하고, 자신의 일을 적당히 열심히 하며, 적당히 친절한 대학생. 적당히 놀고 조금 열심히 공부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새로운 가면을 받았다. 주어진 임무를 하고, 후임들에게 적당히 웃음을 건네는 가면. 


  제대를 하고 나서, 공부를 하려 했다. 대학원으로 지체 없이 지원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꼼꼼하게 하는 학생, 이라는 가면을 쓰고 버거웠다. 세상에 내게 꼭 맞는 건 없다를 되뇌었다. 사회에 쓸모 있는 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밧줄이 꽁꽁 묶었고, 주어진 바에 나를 깎아 맞추기 바빴다. 



  회사에 입사했다. 대학원의 연장이다. 주어진 바를 잘했다고, 아니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다. 동료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직원이 되기로 했다. 가면을 잘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기대하는 바를 적당히 맞춰주고, 살며 지냈다. 여러 붙임이 있었고, 다니던 일을 멈췄다. 


  공허했다. 모든 가면을 벗고는 잠시 있었다. 거울을 보니, 나란 존재가 어색했다. 무엇이 나일까? 착한 장남, 공자 맹자를 외는 아이, 적당히 하는 학생, 자의에 모범이 되는 학생, 적당히 유쾌한 사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따르는 군인, 꼼꼼히 하는 척하는 대학원생, 환경에 투덜거리지 않고 일을 하는 직원?


  글을 썼고, 책을 읽었다. 여러 가면을 나열해 두고 관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색한 나를 살펴보기도 했다. 용기 내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에게 공개하는 브런치 스토리도 있고, 나만의 이야기를 적는 일기도 있다. 가면을 쓴 나를, 가면을 벗은 나를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처럼 글이 가득하다. 변화한 글만큼 나도 변화됨이 보인다.


  시간에 따라 관계는 늘어날 테다. 결혼을 하며 다른 가족이 생기고, 내겐 가면이 더 생길 테다. 가면의 일부가 내가 되고, 가면의 종류에 따라 나라는 사람은 점차 변화할 테다. "변치 않는 유일한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처럼 나도 계속해서 변화할 테다. 


  글쓰기는 변화하는 나를 기록해 둔 가면 전시장이 된다. 글쓰기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내가 쓰고 벗은 가면. 가면이 변화시킨 날 것의 나. 지금도 난 변모하고 있다. 글을 쓴다. 몇 해 뒤, 낯선 내가 지금을 보게 될 테다. 


  쓰자. 기록하자.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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