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박수를.
어쩌다 마을 올림픽.
주말은 짧다. 계획을 정교하게 짜고, 시간 틈 없이 놀기 바쁘다. 삶이 계획처럼 되던가? 가끔은 치밀한 계획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식사 예약도, 방탈출 예약도 영화 예약도 완전했지만, 차가 막히지 않고 뻥 뚫렸고, 대기 시간은 없었으며, 주차 자리는 때마침 생겼다. 영화를 보러 온 마지막 예약 시간보다 너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밖은 우중충 했지만, 비가 오지 않던 터라 발길을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 때마침 물을 뿜어내는 분수 앞에 기다란 의자가 비었다. 후다닥 뛰어 앉았다. 아이들이 물을 맞으며 분수를 오갔다. 하트의 아랫부분이 땅 속에 들어간 모양이 있다. 물이 쏟아진다. 붉은색 하트가 큰 곡선을 그리고 남색 하트는 작다.
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니, 반복되는 행동이 보였다. 이상했다. 한 아이가 열심히 신발을 위로 던진다. 아이가 향한 시선을 따라 멈춘 곳은 하트 구조물의 '폭' 들어간 부분이다. 눈을 얇게 뜨고 보니 슬리퍼가 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우리가 도착하기 이전부터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음으로 응원하고, 몸은 움찔거렸다. 차에 있는 슬리퍼를 가져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우리 옆 밴치에 있던 가족들이 수근 거린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뚜벅뚜벅 걸어간다. 크록스를 던지기 시작한다. 새로 참전한 친구 때문일까?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두 신발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아쉽게 신발을 건들고 지나가고, 때로는 어림없이 먼 곳을 향하기도 한다.
그렇게 5명의 친구들이 던진다. 그들의 행동이 다가오는 올림픽을 떠오르게 했다. 왜일까? 기억이 조각나 정확하지 않은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말한 올림픽 정신을 찾아본다.
"스포츠를 동해 심신을 향상하고 문화와 국경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 완전한 문장을 보니, 아이들이 하는 신발 던지기는 올림픽 경기처럼 보이는 이유가 보였다. 난 어쩌다 올림픽 관객이 되었다.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며, 오늘 처음 본 아이들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슬리퍼를 던진다. 시도하고 바닥에 떨어진 신발을 주인에게 찾아준다. 던질 기회를 부여한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던지고, 또 던진다. 묘하게 순서를 지키고 있다. 페어플레이다. 경기를 지켜보는 우리도, 신발은 던지고 있는 그들도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아쉽게 닿지 못한 신발을 보며, 다 같이 합창하듯 "아~"라는 탄식을 남긴다.
얼마나 던졌을까? 한 번 두 번 맞더니 이젠 흔들거린다. 중학생 아이는 자신은 여기 까지라며, 물에 흠뻑 젖은 옷을 짜며 분수에서 조금 벗어났다. 뒤 돌아 서있는 순간. 극적으로 키 큰 여자 아이가 간당거리는 신발을 맞추더니 성공했다.
분수를 둘러쌓고 있던 관객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고, 물을 짜고 있던 친구를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가족들은 네가 거의 다 한 거라고, 잘했다며 등을 두드린다. 신발 주인 아이는 잽싸게 신발을 들고는 꾸벅 인사를 하며, 물놀이를 다시 시작한다.
어쩌다 참여한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누구에게 금메달을 수여할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들만의 경기를 했고, 심신을 향상하고, 나이 차이를 극복하여 우정과 연대감 그리고 페어플레이를 하며 더 나은 한국의 실현에 공헌했다.
보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영화 시간이 다가왔다. 처음처럼 아이들이 뛰어논다. 어쩌다 마을 올림픽은 마음에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