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엔 우리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좀 들여놓을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 스스로가 더 어색하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할까..' 싶은 찰나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당신이?”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누구보다 냉소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일 테다.
낭만보단 노동.
잠깐 반짝일 장식을 위해 그 무거운 짐을 꺼내고,
뻣뻣한 인조 나뭇가지를 펴다 손톱 밑을 찔려가며 설치하고
지네전구.. 풀자마자 엉키는 그 전구를 풀기 위해 한참을 씨름해야 하는 장식의 과정,
겨울이 지나면 다시 먼지를 털어 박스에 넣는 일까지 생각하면
내게는 쓸데없는 번거로움으로만 보였다.
"트리가 뭔지 다 알잖아, 설치한다고 인생이 달라져?"
나의 20대 30대 초반을 지탱해 온 견고한 이론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나뭇가지에 손톱 밑을 몇 번 더 찔리더라도
기어이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싶었다.
냉소와 잠식 속에서 효율과 쓸모를 따지느라 놓치고 살았던
'계절의 무게'를 이제야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진 탓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굴던 시절이 있었다.
건강은 기본값이고 시간은 무한하며
내일은 당연히 오는 것임을 아무 의심 없이 믿던 때.
평일 퇴근 후엔 그대로 침대에 붙어 각종 영화 드라마 영상을 보며 뒹굴거리고
주말이면 피시방으로 출근해 밤새 담배 연기를 섞어가며 라면을 먹다가 해가 뜰 때 퇴근한다.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던 시절.
돌아보니 그 시절은 참 좋았다.
시간을 허비할 수 있었다는 건
시간의 값어치를 몰랐다는 뜻이었고
그건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어떤 사치보다 소중한 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 지난 몇 달 동안 몸이 보냈던 작은 경고등 하나가 생각보다 큰 파문을 일으켜
내 안의 많은 당연함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강물이 굽이치는 지점에서야
물살의 방향이 보이듯
나 역시 꺾이는 지점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찰나의 순간을 대충 지나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솟아난다.
물 한 모금이 시원하면 아우! 시원해서 좋다! 하고
샤워하는 물이 따뜻하면 따뜻해서 좋다! 하더니
산책 중 달이 예쁘면 괜히 핸드폰을 꺼내 들게 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잔소리하던 엄마들의 프로필 사진 속에
늘 꽃이 배경으로 자리하는 이유도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그래서 올해 겨울이 오면
트리를 들여놓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들여놓아야 할 것 같았다.
트리가 나의 현실을 극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올 겨울을 조금 더 천천히 살아보고 싶어서.
그래서 올 겨울을 조금 더 온전히 경험하고 싶어서.
크리스마스, 엄마가 나와 형의 손을 붙잡고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트리 밑에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그렇게 어릴 적 부모님이 내 겨울을 온전~히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한 그 마음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건네보려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을
조금 더 잘 살아가기 아니, 사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