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만나면 반가운
2018.05.04 Schloss Neuschwanstein, Schloss Hohenschwangau (Füssen)
호스텔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느지막히라고 쓰고 7시라 읽는다)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고 유레일을 드디어 개시하기 위해 뮌헨 중앙역으로 발을 옮겼다. 호스텔에서 나가기 전, 식당 벽면을 보니 “A journey is best measured in friends, rather than miles (여행은 마일보다 친구로 측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정말 호스텔에 적혀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문장이지만 또 다른 깨우침을 주었다. 이제껏 사람들을 경계만 했지, 다가가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뮌헨 중앙역에 가서 유레일 표를 개시하고 열차를 찾아 플랫폼 27번으로 이동했다. 독일 기차 종류에는 자리 지정이 없는 열차와 자리를 예약할 수 있는 열차가 있는데, Füssen 으로 향하는 열차는 자리를 예약하지 않고 아무 곳이나 앉아도 되는 열차라 2층에 앉았다. 마치 지하철처럼 자리가 나는 대로 앉는 방식인데, 뮌헨 중앙역이 종착역이자 출발지점이었기에 우리는 원하는 자리에 앉아 편히 갈 수 있었다. 2시간 남짓의 기차 여행은 양옆에 끝없이 펼쳐진 들판 전원생활, 목장, 그리고 울창한 침엽수림을 보는 것의 연속이었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재채기를 했을 때 bless you! 를 독일어로 해주신 옆에 앉은 할머니와 열심히 작은 별 노래를 부르던 독일 꼬맹이들도 두 시간이 지나니 헤어지기 아쉬웠다. 평화로운 들판이 경계심으로 닫힌 마음을 열어주었나 보다.
Füssen 은 작은 시골 동네인데, 모든 사람이 내려서 같은 버스(73번이나 78번)를 타고 (왕복 4.6유로다) 노이슈반 성이 있는 산 아래 정류장에서 내린다. 막시밀리언과 루드비히 2세도 여름 별장으로 쓴 성이라고 하니 정말 이 동네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호수와 산을 가진 복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묵직한 배낭을 기차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놓고 가벼운 몸으로 마을버스에 몸을 실었다.
노이슈반성과 호엔슈반가우성 입장 티켓을 미리 예약했는데 예약시간보다 늦어서 조마조마했지만 표를 수령하는 곳에서는 흔쾌히 추가 벌금을 물지 않고 새로 표를 끊어주었다.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성 공식 사이트에서 시간대별로 입장 티켓 예약을 할 수 있다 / 물론 영어 투어 시간 또한 공식 사이트에 자세히 나와있다.) 호엔슈반가우성 까지 올라가는 길은 말똥 냄새가 그윽한 이쁜 오솔길이었다.
그 지방 귀족 가문의 대표 문장이 백조인데, 산속에 있는 에메랄드빛 호수에는 백조들이 아름답게 떠 있었다. 루드비히 2세가 성 내부 방의 모든 장식을 백조로 할만했다 싶을 정도의 우아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호엔슈반가우성 내부는 촬영이 불가한데,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난방 시스템이었다. 여름 별장이었지만 가끔 추워지는 때도 있어서 벽난로가 각 방에 있는데, 벽난로에 땔감을 넣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땔감 넣는 구멍이 벽에 나 있어서 벽 틈새로 하인들이 기어들어가서 땔감을 넣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벽과 벽 사이에는 사람이 하나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틈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벽에는 티도 안나는 작은 문이 있었다. 왕은 일층에, 여왕은 2층에 살았는데, 여왕의 침실과 왕의 침실에는 서로 통하는 비밀 계단이 있다고, 밤에 사용하는 목적이라고 하는 가이드의 설명은 모두를 웃게 했다. 영어 투어라 정말 다양한 인종의,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같이 웃고 새로운 정보를 같이 배워간다는 사실이 새삼 또 다른 동질감과 연결고리를 느끼게 해 줬다.
한 시간 남짓의 투어가 끝나고 호엔슈반가우 성에서 내려가서 반대편 산등성이를 둘러 40분이 걸리는 등산 끝에 반대편에 있는 노이슈반 성에 도착했다. 노이슈반은 호엔슈반가우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독립하고 싶었던 루드비히 2세가 중세 시대 성 터를 발견해 그 위에 17년에 거쳐 세운 성인데, 준공 중에 루드비히 2세가 의문의 죽음으로 40이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은 성이다. 외관은 정말 독일스럽다, 장엄하고 굳건하게 깔끔함을 잘 드러낸다, 라는 영감을 주지만 내부는 루드비히가 제일 좋아하던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를 위해 꾸몄으니, 화려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심지어 바그너의 오페라의 장면을 표현한 벽화로 가득 찬 방이 있는가 하면 동굴이 배경인 오페라의 배경을 현실화하기 위해 뜬금없이 성 내부에 인공 동굴을 만들기도 했다. 정말 바그너를 향한 루드비히의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성이었다. 내부는 비잔틴 양식, 고딕, 심지어 네오고딕 양식까지, 균일하다기보다 각자 의미가 담긴 화려함으로 가득했다.
노이슈반 성의 투어가 끝나고 제일 멋진 사진 포인트라는 절벽 위의 다리에 갔다. 정말이지 두 절벽을 나무판자로 된 (심지어 사람이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다리로 연결했는데, 그 위험천만한 곳을 아이들은 뛰어다니기도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와중에 건질 사진은 모두 건지고 다시 기차 역사로 내려오는 길은 오랜 산행으로 지친 몸을 위해 작은 선물을 하고자 내려오는 길은 1.5유로짜리 버스를 탔다.
산에서 내려와 다시 Füssen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중국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중국어로 막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어로 미안하다고, 우린 한국인이라 중국어 잘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자 알겠다며 돌아가셨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눈에는 한, 중, 일이 너무 구분이 잘 되는데 중국인 눈에는 잘 그렇지 않나 보다. 중국에는 워낙 다양한 소수민족이 많아서 그런가... 같은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던 다른 여자 둘은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지 얘기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탔는데 우연히 그 여자들이 앞에 같이 서 있어서 옆에 있던 내 룸메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콜롬비아에서 왔다고 하면서 그 둘도 우리처럼 배낭여행을 왔다는 이야기,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릴 때 웃으면서 서로의 여행에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는 이야기를 할 만큼 친근해졌다.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열자는 오늘 아침의 교훈을 실천으로 옮긴 것 같아 은근히 뿌듯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먼저 묻는 첫마디가 늘 어렵고 고민되지만 마음을 연 보상을 웃음과 대화, 그리고 친절로 받을 때 더 따뜻함을 느낀다. 용감한 시작에 대한 상을 받는 뿌듯함은 덤이다.
낯을 많이 가려서 손님이 많이 없었다는 루드비히 2세의 아름다운 성이 관광명소로 바뀌기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면 루드비히의 인생도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