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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an 04. 2024

계란 김밥을 굽는 밤


  모처럼 가족 모두가 먼저 잠든 밤, 나 홀로 깨어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낮에 쓴 글을 정리하다 보니 출출해졌다. 생각해 보니 오늘 저녁을 먹지 않았다. 더 배고파지기 전에 자러 갈까 했지만 쓰던 글이 눈에 밟혔다. 문득 냉장고에 남겨둔 김밥이 떠올랐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기엔 역시 늦은 밤이 최고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주방을 향했다. 조용히 냉장고를 열어 하나둘 재료를 꺼냈다. 계란과 김밥과 약간의 기름만 있으면 준비 완료. 나만을 위한 계란 김밥을 만들 생각이었다.

     

  사실 계란 김밥은 남편의 소울푸드다. 어릴 때 종종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기름에 김밥을 구워 먹다니. 처음 보는 요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며 웃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정말 다르게 자라왔다 생각하던 신혼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후 김밥을 살 때마다 일부러 한 줄 더 사거나 조금만 먹고 남겨두었다. 이쯤 되면 김밥을 먹으려고 산 건지 계란 김밥을 위한 재료를 산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식탁 위 따끈한 계란 김밥을 보며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동그랗게 웃는 남편의 입 안으로 김밥이 쏙 들어갈 때마다 이런 게 바로 행복이라고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모든 게 다른 우리가 만나 함께 사는 매일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어느덧 10년. 처음에는 무조건 맞추는 게 최선인 줄 알았다. 무작정 참다 보니 한 번에 쾅 폭발했고, 서로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찔렀고, 겨우 화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기를 통과하며 알게 되었다.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조심히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을. 적정선을 넘지 않고, 차분하게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10년 동안 세상만 변하는 건 아니다. 완벽하게 다른 두 사람의 삶의 방식도 천천히 바뀐다. 말투와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상대방이 그 행동을 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감싸는 마음이 생겼다. 얼어붙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손을 잡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이 듦이 주는 축복이 있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좀 더 괜찮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늘 남편을 위해 만들던 계란 김밥을 오늘은 나를 위해 준비한다. 노란 계란물 휘휘 저어 준비해 두고, 냉장고 속에서 차갑게 굳은 김밥을 퐁당 담가둔다. 팬을 꺼내 데우고 기름을 휘리릭 두른 뒤 잠시 기다린다. 젓가락으로 계란물 입은 김밥을 조심스레 꺼내 달궈진 팬 위로 하나씩 올린다.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나면 그 옆으로 남은 계란물을 마저 부어 노릇노릇 굽는다. 나를 위한 게란 김밥 다섯 개와 계란 스크램블 완성. 은은한 식탁 조명 아래 소박한 음식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글 한편만이 남아 있다. 가지런히 놓인 김밥 하나를 입에 넣는다. 살짝 밴 김밥 재료들의 맛이 조화롭다. 따뜻하고 맛있다. 감탄하며 김밥을 먹고, 글을 쓴다. 눈 비비며 일어난 남편의 빈 속을 이렇게 따뜻하게 데워줬으리라. 김밥을 먹으며 웃는 남편의 눈과 입을 떠올린다. 조용히 나도 동그랗게 웃는다.

    

  부부는 닮아간다더니 계란 김밥이 우리에게 그렇다. 남편이 좋아하니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랑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우리는 서로의 이해 못 할 습관을 눈감아주고, 다른 취향을 인정한다. 서로의 가족을 걱정하고, 가끔은 몰래 상대 가족의 안부를 묻는 감동을 준다. 각자 인생에 어떤 아킬레스건이 있는지, 폭발하는 지점이 있는지 역시 잘 알고 있다. 무너질 것 같을 땐 옆에 서서 팔을 잡아주고, 슬플 땐 조용히 안아준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함께 만들어갈 삶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눈다. 우리 인생에 앞으로 몇 번의 밤이 남아 있을까. 가끔은 너무 아득하고 막막해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딱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추억이 될 음식을 만들고, 매일 작은 행복을 찾고, 되도록 많이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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