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현관에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다. 아침에 도착한 ‘소포 우편물 배달 예정’이라는 문자가 떠올랐다. 어머님으로부터 온 소포구나. 낑낑거리며 상자를 집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커다란 상자 안에는 손수 농사지은 고구마가 한가득이다. 우리 집은 달랑 세 식구인데 두고 먹으면 된다며 기어코 꽉꽉 채워 보냈다. 엊그제 도착한 우리 엄마 택배와 닮았다. 귤을 따자마자 보낸다며 감기 걸리지 않게 자주 먹으라는 전화가 왔었다. 남편 회사와 시댁, 주변과 나눠 먹을 수 있게 세 박스나 보냈다. 둘 다 왜 이렇게 손이 큰 거야, 더 이상 둘 데도 없는데. 툴툴거리면서도 미소 짓게 된다. 먹음직스러운 고구마 몇 개를 꺼내 노릇노릇 구울 준비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할머니표 고구마와 귤을 먹으며 얼마나 좋아할까.
겨울이 왔다. 자꾸만 무언가를 보내는 사람들 덕분에 배도 마음도 헛헛해질 틈이 없는 계절. 달큼한 군고구마 냄새를 못 이기고 하나 집어 든다. 노란 속살을 한입 베어 물었더니 따뜻함이 목 뒤로 넘어간다. 직접 농사지은 것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맛있는 걸까. 마트에 있는 귤과 고구마도 누군가 정성스레 농사지은 것들인데 뭐가 다른 걸까. 다용도실에 쌓여 있는 두 사람의 흔적을 본다. 매실청과 검은콩, 배추, 무, 양파. 냉장고를 열면 겉절이, 파김치, 무김치, 배추 김치, 냉동실에는 멸치와 갈치, 옥돔까지 든든히 채워져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부지런히 배달된다. 내가 받고 싶든 그렇지 않든, 우리 집 현관 앞에 기어코.
이따금 그 사랑이 귀찮거나 부담스러웠다. 입 짧은 세 식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정리도 나눔도 때를 놓치면 결국 버리게 된다. 다 해치우지 못한 음식들을 정리하는 사람이 결국 내가 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보내지 말라고 해도 자꾸 보내면 어쩌라는 거야. 입이 잔뜩 나온 채 묵은지가 되고 곰팡이로 변한 음식을 보며 이 아까운 것, 진작 먹을 걸 하며 속상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다. 이렇게 전달되는 마음들이 있다. 택배 상자를 열어 정리하고, 주변과 나눠 먹고, 감사 인사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한 계절이 왔음을 깨닫는다. 우리 집 현관 앞에 이 생생한 사랑이 담긴 택배 상자를 발견하는 날이 몇 번이나 남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가슴을 몇 번 탁탁 치고 조용히 쓸어내린다.
그들의 사랑은 몇 차원을 건너뛴 다른 종류의 사랑 같다.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푸른 바다 같은 사랑. 늘 고마운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엄마도, 시어머님도 내게 서운한 것 투성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사랑을 보내는 마음을 나는 절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다 먹으면 또 보내줄게, 많이 많이 먹어.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그 아득한 사랑을 나는 어떤 단어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네, 많이 먹고 건강하게 겨울을 보낼게요. 시큰해진 코끝을 문지르며 전화를 끊는다. 새콤달콤한 귤을 꺼내 소파에 앉아 밖을 본다. 올해 첫눈이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