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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an 19. 2024

나의 매일을 기록하다 보면


  신중하게 고른 2024년 다이어리가 방금 택배로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피스타치오 색의 다이어리가 방긋 웃고 있다. 시간대별로 하루를 나눠 기록할 수 있는 타임테이블과 깔끔한 속지가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연말이면 늘 습관처럼 산다. 휴대폰 어플이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중요한 일정이나 해야 할 일은 펜으로 적어둬야 기억하기 편하다. 급하게 떠오른 글감을 적기도 좋다. 다를 것 하나 없는 비슷한 하루라도 소중한 것은 자꾸만 생긴다. 일상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여러 개의 노트에 매일을 기록 중이다.


  나의 아침은 기록으로 시작된다. 모닝페이지는 몇 년 전부터 같은 디자인의 6공 바인더 안에 흰색 내지를 끼워 쓰고 있다. 필사를 하는 작은 우드톤의 수첩,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쓰는 초고는 늘 아이패드 메모장을 사용한다. 여기저기 써둔 글을 모아두는 에버노트 어플,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어 시작한 5년 일기장까지. 어제는 서랍에서 쓰다만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마침 읽은 책을 기록하고 싶었는데 딱이다. 수첩이 많은 게 불편하지 않냐고? 처음에는 그랬다. 일부러 큰 노트에 섹션을 나눠 적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영 쓸 맛이 나지 않았다. 써야 할 내용이 다르므로 노트가 달라야 적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여러 개의 수첩이 책상 위에 자리 잡게 되었다.


  책을 읽고 글 쓰는 습관은 몸에 익었으니 작은 습관 하나를 붙여보고 싶었다. 나의 매일을 기록하는 것. 다이어리와 노트를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 시작했다. 습관을 만드는 데까지 보통 21일이 걸린다고 한다. 안 쓰던 일기를 쓰려니 까먹기 일쑤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때마다 스스로를 격려했다. 좋은 습관이 선물처럼 생기게 될 거라 믿었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가장 편한 상태로 있고자 하는 강한 본능이 있다. 나 역시 소파에 늘어져 있고 싶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쓰기 이전의 삶으로, 기록하지 않아도 별일 없던 날들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럴 땐 오히려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떤 날엔 아주 맛있는 라테를 마시며 생각했다. 괜찮다고, 다시 쓰면 된다고.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쓰며 뇌를 깨운다. 일찍 일어나는 건 힘들지만 엄청난 성취감이 있다. 어떻게든 일어나 쓰다 보면 글감이 떠올라 초고를 새벽에 완성한 적도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남편은 회사로, 아이는 학교로 떠나면 펜과 노트를 들고 나의 진짜 하루를 시작한다. 오롯이 혼자인 오전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운다. 작은 수첩과 아이패드 메모장에는 책을 읽으며 만나는 문장을 필사한다. 마음에 남는 단어, 힘이 되는 글귀를 차곡차곡 모은다. 아이와 남편이 돌아온 저녁에는 다 같이 책을 읽는다. 딸의 예쁜 말과 사랑스러운 행동, 잊고 싶지 않은 날들을 5년 일기장에 써둔다. 각기 다른 노트에 기록하다 보면 하루가 또 무탈히 지났음에 감사하게 된다.


  나의 하루에는 수많은 글쓰기가 있다. 그래서일까.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음에 어떤 물결이 일어도 금세 잔잔해진다. 일상 곳곳에 마련해 둔 나의 방공호들. 나의 노트, 나의 일기장, 나의 기록, 나의 글쓰기 덕분이다. 손에 닿는 뭐든 꺼내어 쓴다. 기뻐도 쓰고 슬퍼도 쓰고 기억하고 싶어도 쓴다. 이야기가 쌓이는 기쁨을 만끽한다. 일상을 바꾸는 건 사소한 것들이다. 작은 것에는 힘이 있다. 꾸준하고 성실한 습관이 우리를 바꾼다. 쓰다 보니 더 많이 쓰고 싶어 졌고, 잘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닿고 싶어졌다. 도움이 되는 글,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기록의 힘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다정한 마음을 가득 담아 글을 쓴다. 내가 꾸준히 쓰면 쓸수록 읽는 사람은 일상에서 새로운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나의 마음이 고요할수록 독자의 마음 역시 안온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안고서. 나의 글은 매일 아침 새로 태어난다. 글 쓰는 나 역시 함께 태어나고 자란다. 바로 이 순간에도, 지치지 않고 부지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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