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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an 26. 2024

급식 모니터링 체험기


  매일 다양한 공지가 학교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다. 대부분 학교행사나 안전에 대한 것이다. 어느 날 ‘급식 모니터링’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멈췄다. 딸은 입이 짧고 식감에 예민하다. 급식을 입만 대고 오는 수준으로 먹고 온다. 어르고 달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먹을 반찬이 없다, 너무 맵다, 억지로 먹다 토할 뻔했다 등등. 급식은 아이에게 분명 스트레스였다. 그러니 ‘학부모 급식 모니터 요원 모집’이라는 제목은 내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대체 밥이 뭐길래. 먹든 안 먹든 그냥 놔두면 될 텐데 뼛속부터 한국 엄마인 나는 딸의 식습관이 늘 고민이었다. 편식이 심한 게 죄다 내 탓인 것 같았다. 배고픈 채 하루를 보낼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요즘 여러 가지 사건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의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니 고민이 되었다. 가는 게 맞나 수십 번 망설임 끝에 신청 버튼을 눌렀다. 더 이상 혼자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직접 가서 살펴보면 뭔가 답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급식실로 향했다. 총 3명의 이름이 명단에 있었지만 정작 온건 나 혼자였다. 다들 신청만 하고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영양사 선생님이 다가와 친절한 인사를 건넨다. 능숙한 손길을 따라 흰 모자를 쓰고, 위생 가운을 입고, 장갑을 착용했다. 급식실은 넓고 쾌적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배식 과정을 지켜보고 아이들이 식판 정리를 어려워하면 도와주는 정도였다. 급식실로 들어선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새로 온 선생님인 줄 알고 말을 거는 아이들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새로 오셨어요? 젓가락 좀 가져갈게요. 저는 물 마시러 왔어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주변을 맴도는 아이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용하던 급식실이 웃음소리, 재잘거리는 말소리, 식판 부딪치는 소리가 뒤섞여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배식은 정해진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배식하는 이모님들과 아이들 사이에 질서와 체계가 공존했다. 각자 자신의 식판을 들고 리듬감 있게 담기는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는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 친구가 먹는 걸 구경하는 아이, 반찬 하나하나 음미하며 먹는 아이. 각양각색의 아이들은 왁자지껄 밥을 먹고 식판을 정리하고 입을 닦고 물을 마셨다. 마치 모든 게 신나는 놀이 같았다. 학교에 가도 될까 고민한 건 괜한 기우였구나. 밝은 표정의 아이들과 질서 정연하게 지도하는 수많은 선생님들. 모든 게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급식줄 사이로 딸이 등장했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는 의젓하게 음식을 받아 자리로 간다. 드디어 실시간으로 급식 먹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식판을 정리하러 간다. 찡긋 윙크하더니 친구들과 함께 빛보다 빠르게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다. 오늘은 밥을 얼마나 먹었니, 도대체 왜 안 먹는 거니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급식으로 배를 채우면 좋겠지만, 이미 행복과 즐거움으로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데 말이다. 배식이 끝나자 학교 급식도 한번 드셔봐야죠 하며 음식이 잔뜩 담긴 식판을 건네받았다. 창가에 앉아 점심시간의 학교를 마음껏 구경했다.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고되고 힘들어도 학생들 때문에 버틴다는 선생님들의 말에 공감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역시 너무 행복했으니까.

     

  학교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교권은 자꾸만 추락한다. 아이들의 학습권도 덩달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세상은 자꾸만 슬퍼지는 걸까. 학교 밖에 있던 나는 인터넷 뉴스와 사람들의 말만 들으며 걱정만 하고 있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가라앉아 있을 거라 생각했던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곳 그대로였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른 척하지 않는 것. 함께 고민하는 태도를 갖는 것. 아이들이 학교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일 아닐까.

   

  이 글은 지난여름에 썼다. 그 사이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글을 끌어안고 수십 번 고치고 또 고쳤다. 해맑은 아이들 옆에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던 선생님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 얼굴이 눈에 밟혀 이 글을 썼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변했다. 각종 설문과 의견 제출에 적극 동참했고, 가끔 알림장에 감사의 댓글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어머님’이라는 선생님의 답글이 달릴 때면 코끝이 찡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기분이었다. 나의 작은 응원이 힘이 되었으면. 부디 모두의 안온을 바란다. 그래야 아이의 행복도 존재할 테니. 학교는 그런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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