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째 아이를 몇 시간의 진통 끝에 제왕절개술로 낳은 탓에, 둘째 아이 출산도 자연스럽게 수술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제왕절개술이 흔하다고는 해도 수술은 수술이고, 출산이 워낙 변수가 많다는 걸 알기에 서울에 있는 대형 3차 병원에서 낳기로 했다. 물어 물어 유명하다는 교수님도 선택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임신 기간 중 나와 아이 모두 건강했기 때문에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걱정이나 염려보다는 아이를 만날 기대에 차 있었다.
겁이 워낙 많아 전신 마취를 선택한 탓에, 수술이 끝나고 눈을 떴을 때, 이미 아기는 신생아실에 옮겨진 후였다. 입원실로 가서 남편을 만나 “아기는 괜찮대?”라고 묻는 말에 남편은 조금 머뭇거렸다. “아,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왔어. 아기가 숨 쉬는 걸 조금 힘들어한다고… 무슨 수치가 또 떨어지면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대. 나도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어.”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남편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남편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리면 분명 나쁜 소식일 터였다. 남편의 위로 덕분에 겨우 긍정적으로 마인드 컨트롤하던 중, 두 번째 전화벨 소리에 무너져버렸다. “지금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긴대. 사인하러 다녀올게.” 남편이 가버리고 남은 텅 빈 입원실에서 두려움이 몰려와 악을 쓰고 울었다. 마취는 덜 깨서 몽롱한데, 심장은 진정이 안 되었다.
다음 날이 돼서야 만난 아기는 평온해 보였다. 단지, 탯줄에는 항생제가 들어가는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고, 심박동 수, 맥박수, 산소포화도 등 각종 수치를 확인하는 줄들이 온몸 구석구석 붙어있었다.
하루에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단 40분.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사랑한다고. 건강해져서 얼른 퇴원하자고.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자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다.
그 날부터 원인을 밝히기 위한 수많은 검사들이 며칠에 걸쳐 진행됐다. 심장 초음파, 뇌 초음파, 뇌파… 마지막에는 수면제를 먹여 뇌 MRI까지 찍었다. 한 가지 검사가 정상이면, 다른 검사를 진행하는 수순이었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하루하루였다. 딱히 밝혀지는 건 없었다. 단지, 뇌파만 추후에 다시 검사해보자는 이야길 들었다. 원인은 알지 못한 채로 아이가 건강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원인을 나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공부한다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나? 잠을 충분히 안 잤나? 커피를 마셔서 일까? 나쁜 생각을 많이 해서일까?’ 온갖 후회와 자책이 난무했다.
무엇보다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신생아 중환자실이라는 공간 자체였다. 생후 8개월인데도 호스를 끼며 살아가는 아기, 힘이 없어 울지도 못하는 아기들이 함께 누워있는 그곳. 간호사가 부족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아기들이 제때 분유를 못 먹어 배고프다고 울어 대고, 응가도 방치되어 시뻘겋게 탈이 난 엉덩이에 덕지덕지 약을 바르는 그곳.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아기와 같은 병원에 쭉 머무르고 싶었지만, 병원 정책상 그럴 수가 없었다. 아기를 병원에 두고 먼저 퇴원해 조리원으로 향했다. 아기에게 건강한 모유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유축하고 아이스박스에 담아 매일 면회시간에 맞추어 병원으로 갔다.
탯줄에 붙어있던 항생 주사, 얼굴에 붙어있던 산소호흡기 등이 하나씩 사라지더니, 퇴원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면서 “감사합니다”를 가장 많이 외쳤던 순간 이리라. 아기를 낳은 지 열흘만에 처음으로 품에 안아봤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몇 차례 뇌파검사를 진행하며, 스스로 잡은 d-day가 세돌이었다. '세돌까지만 어떤 이벤트도 발생하지 않기를. 세돌까지만 무탈하게 흘러가면 아무 문제 없는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런 세 돌을 드디어 맞이했다.
안도와 감사의 마음이 뒤엉켜 눈물이 쏟아진다.
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남들 다 그냥 대학 가는 것 같은데, 내가 하려면 왜 이렇게 어렵지? 결혼도 다들 순탄하게 잘만 하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렇게 준비 과정이 쉽지 않지? 아기도 그냥 무탈하게 잘만 낳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러지?'
하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나 어려움 한 가지 쯤은 있었을 것이다. 어디 한 가지 뿐이었으랴. 살아가며 그냥 되는 것은 없다. 당연한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 감사하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라고 기도했던 때가 있었다.
내 곁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