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너였을까? 당신이었을까? 그녀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구였을까?
상무대, 전남대, 도청, 금남로, 전남방직, 가톨릭센터 등...
실제지명과 이름들로 명확하고도 정확히 표현한다.
지금 내가 그곳에서 흔적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책은 어지러이 읽힌다. "너는 출입문으로 돌아온다" -13p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열일곱 살이었다." -177p처럼 네가 누구일지 당신이 누구일지 왜 화자는 내가 아닌지 어지러이 흩어진다. 그러나 멈칫 함 없이 책은 쉬이 읽힌다. 쉬이 읽다 보면 초반에 등장했던 모든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그때 그날의, 상황이 끝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은 채, 죽은 자는 죽은 채 자신의 말을, 소스라치게 날선이야기를 때로는 놀랍도록 잔혹한 이야기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어간다.
"봄이 오먼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않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249p "나라에서 죽인 자식" -239p의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90p
그 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분수대에 물이 나왔나 보다.
매번 그곳을 스쳐 지나갔으면서,
그 곳에 올라 태극기를 흔드는 사진을 본 적이 있음에도,
근처에서 매일 5시 18분이 되면 종을 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분수대는 생각지 못했다.
무슨 축제의 공간이라고 물이 뿜어져 나올까.
또 그곳에 있던 자와 그곳에 있던 자를 알던 자는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을 보며 어땠을까.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127p라고 답하는 공무원처럼
우린 그 일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 강요하진 않았을까?
어쩔 수 없는 것.
그러니 잊어버리라고.
희생자이길 거부하는 자들을,
"우리들을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돼" -229p 외치던 그들을,
큰 역사의 희생자라 그러니 그들의 목소리를
그러려니 하며 안타까운 시선만 주고, 방관했던 건 아니었을까?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관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20p며 이해하지 못해 말하는 너에게 은숙은 답한다. "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고 부를 수 있겠어."-21p
작가는 명확하게 말한다. "살인마 전두환" -248p
그리고 검열로 문단이 드문드문 검게 지워지고 삭제되어 어색하게 이어 붙인 역사를 우린 보고 있지 않았냐고 작가는 묻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나 역시 이야기로 빠져들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사진,
가본 적이 있는 역사관,
무서워하며 들어가 보았던 518 기념공원
그 수많은 공간의 너머엔 개개인의 이야기가 흩어져있다고. 작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고. 바로 그 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라고. 우리를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