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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쉬멍] 제주의 밤빛

바다와 하늘 사이, 제주도를 비추는 밤빛

by 조현

나의 이번 브런치 북

"느린 별 동생과 노고록 제주"의 표지 사진에는

사실, 작은 비밀이 숨어있다.


"어 저게 뭐지?"

"저 수평선에 반짝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여긴, 세화 바다.

10월의 저녁,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수평선 근처 바다 위로

불빛들이 하나 둘 켜져 있었다.


가로등인 듯,

섬의 불빛인 듯,

은은한 점들이 바다 위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처음,

제주 밤바다를 바라봤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 저기 뭐야? 섬인가?"

"우도가 저렇게 보이는 거야?"

"저기 도로가 있나? 가로등인가?"


검푸른 바다 위, 줄지어 선 불빛들.

우린 한참을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 웃으며 알려주셨다.

"저거 다 배 예요.

지금 10월이니까 대부분 갈치나 오징어 잡는 배겠네."


그제야 알았다.

밤바다의 별빛들이, 가로등 불빛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어선의 불빛들이었다는 걸.


숙소, 제주 이층집 2층창가에서 다시 본 바다는,

불빛으로 가득했다.



멀고 가까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다 위 불빛들은,

그저 작고 큰 불빛만 있을 뿐.

한 줄로 서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꼭 사람들 사이 같았다.

마음의 거리가 눈에 보이지 않듯.

밤바다의 불빛들도

거리 대신, 크기로 보였다.


10월, 11월의 동쪽바다는,

밤 12시가 넘어도 여전히 밝았다.

고요한 길 위의 가로등처럼.
바다를 비추는 가로등은
누군가의 삶을 비추는 불빛들이었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그 어둠 속 밝음,

그 까만 고요함 속, 화려한 일렁임은

도무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다.

제주의 밤,

바다 위 누군가의 삶을 비추는 가로등이

별보다 먼저 반짝였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이 바다의 불빛들이 등장한다.

바다 위 떠있는 '백개의 달'이 되어.

https://tv.kakao.com/v/429321769

하이라이트는 8분 10초.

이 부근을 보면, 백개의 달이 나온다.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이 부분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한 아이의 아빠는, 해녀의 아들이다.
그는 타지에서 열심히 살며 돈을 모아, 고향 제주에 돌아가 정착하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큰 사고가 난다. 남편을 간호 하며 돈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제주도에 계신 아이의 할머니께 딸을 맡긴다.
단, 자식을 여럿 떠나보내야 했던 해녀 할머니께는 아이 아빠가 아프다는 사실을 비밀로 한채.
아이는 잘 숨겨보지만, 이내 들키고 만다.
아이는 떼를 쓴다. 소원이 있으니 달 백개가 있는 곳에 데려다 달라고.
소원을 빌고 싶어서.
달 백개가 어디 있냐는 어른들의 놀림에도, 아이는 꿋꿋하게 말한다.
"아빠가 있댔어요!"
백개 같은 단 하나의 소원을 위해.
"아빠, 아프지 마세요. 은기 데리러 오세요."
그리고 진짜 달 백개를 보게 된다.


나는 그 장면을 드라마적 상상, 혹은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제주에서 진짜 '달 백개'를 보기 전까지는.


10월, 11월의 제주 바다에는

정말로 백개의 달이 떠있었다.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앗. 나도 소원 빌어야 했는데.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제주는 시골이다.

조금만 번화가에서 벗어나면, 가로등도 캄캄하다.

그래서 밤바다는 더 고요하고, 더 짙다.

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반짝인다.



내가 좋아하는 최유리의 '밤, 바다'라는 노래에

밤, 바다는 위로의 공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https://youtu.be/rKUmYKHu-FI? si=-cpSQzDgjCtNrxCa

바다는,


소란한 마음을 감춰주는,

흐트러진 마음을 쏟아내도 되는,


그저 옆에 있어주는

위로의 공간이다.


지친 마음이 닿는 곳에

그저 너의 밤이 되어주는,

그런 곳이다.


누군가에게는 위로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그런 밤, 바다이다.



마지막으로,

오늘은 항상 첨부하던 동생의 일기 대신

제주의 밤하늘사진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제주의 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진다.

사진으론 절대 다 담기지 않는다.

이게 최선이었다.

저녁 늦게 해안도로를 달리다

"잠깐! 아빠, 차 세워봐!"

"라이트 꺼줘요!"

하며 급히 찍은 사진인데,


별이 흐릿하게, 잘 담기지 않았다.



까맣게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별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나는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저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 밤,
제주의 바다는
불빛들로 반짝였다.
어쩌면,
바다와 하늘은
서로의 빛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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