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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걸으멍] 오름 - 다랑쉬오름둘레길

걷기 좋은 길 7. 다랑쉬오름둘레길 (+ 새별오름)

by 조현

<괜찮아요!

위로 향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우리 가족은 평지를 걷는 걸 좋아한다.

다시 말하자면, 오르막길은 싫어한다.

그래서 사실,

오름을 많이 가보지는 않았다.



항상, 사람들은 위로 향한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라고 한다.

더 멀리, 더 넓게 보기 위해.

남들보다 더 위로, 더 높이.


그렇지만,
나는 천천히
옆으로,
완만한 길로 걷는 게 좋다.


숨이 차지 않게,
더 편하게,
풍경이 더 오래,
더 진하게 남도록.




너무 편하고 좋았던 다랑쉬오름 둘레길.

(그리고 오르느라 힘들었던, 새별오름.)


■ 다랑쉬오름 둘레길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표지판의 설명에 따르면, 그만큼 아름답고, 화산체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다랑쉬오름에는

굳이 힘들게 정상으로 향해 오름에 오르지 않아도,

(다랑쉬오름은 공식책자에는 난이도 상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다녀오신 분들 후기를 보면 초등학생도 가긴 하더라.)

그 옆으로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있다.



제주오름테마북 (https://www.v isitjeju.net/kr/bbs/list?bbsid=tripperCenter-book&menuId=DOM_000001724002000000&page=1 비짓제주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공식책자)에서는 다랑쉬오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랑쉬오름 '힘들지만 경치가 좋은 오름'.
'정상에 움푹 들어간 엄청난 크기의 분화구가 있고 그곳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펼쳐지는 풍경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
오름의 여왕에게는
아름다운 정상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옆,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둘레길이 있다.


다랑쉬오름 주차장에 도착하면,

안내표지판 앞에서 두 갈래 길이 보인다.

까마득히 위로 치솟는 오르막길.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둘레길.

둘레길이 오른쪽에만 있다.

"둘레길이라면, 한 바퀴 도는 거잖아? 그런데 왜 오른쪽길만 있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왼쪽길은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왼쪽으로 이어진 숲길은 없기 때문이다.

둘레길은 완벽한 원형으로 닫히지 않는다.

돌아올 때는

차도 옆 인도를 따라 돌아오게 되어있었다.


다랑쉬오름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대부분 다랑쉬오름의 오르막길 '정상으로 향하는 길'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천천히 오른쪽길로 발을 옮겼다.

"이 길도 이렇게 예쁜데 왜 아무도 안 가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예쁘고 평탄하던 길이 이내 서서히 오르막길이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오르막길이 길어

"이거 조금만 가면 정상에 닿는 거 아냐?"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오르막길은 금세 다시 평평한 길로 이어졌다.

숲은,

너무 아름다웠다.

길은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었고,

햇살이 스며든 숲 속 가을 공기는

부드럽고 고요했다.


걷다 보면 어느새 발걸음이 느긋해진다.

갈림길도 없이,

널따란 오솔길은 마음까지 느긋하게 만들었다.


오르막을 오르는 땀방울 대신,
따스한 바람 사이의
여유를 만끽했다.

숲이 끝나면 차도가 나온다.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 옆,

인도를 따라 걷다 보면

시야가 탁 트인다.



저 멀리 다른 오름들이 보이고,

성산일출봉도 보였다.

가을 녘 허수아비도,

바람에 흔들리며 손 흔들어주었다.

한 시간쯤 걸어,

원을 그리듯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긴 하지만,

걷기 편하고 널따란 길이다.


오르지 않아도,

굳이 위로 향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


다랑쉬오름이다.



걷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늘 위로 향한다.
더 높은 곳,
더 좋은 풍경을 향해.
하지만,
모두에게
그 길이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위로 오르며
세상을 보고 싶어 하지만,
누군가는 옆으로 걸으며
자신만의 속도 안에서
세상과 함께한다.


마치, 서른 해가 넘는 시간 동안

세 살로 살아가는

내 동생 율이 처럼.

그리고 때론 나처럼.

우리 가족처럼.


그런 우리에게,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은 위로를 건넸다.

괜찮아. 옆으로 가도 돼.







그래도

가끔은 위로 오를 때도 있다.


너무 유명해서 꼭 가봐야 한다는 이야기,

"천천히 오르면, 어린이도 오를 수 있어!" 하는 인터넷 글,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있다던 유혹에 홀랑 넘어간 적도 있었다.


"우리도 남들처럼,

오름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어?" 했던 날.

결국, 우리 가족은 새별오름을 올랐다.

오르다 후회했지만.



■ 새별오름


가을이면 꼭 가봐야 한다는 말들에 넘어가,

우리가 살던 동쪽에서도 꽤 먼 곳이었지만,

"도전!"을 외치며 찾아간 새별오름.

새별오름
난이도 중, 사진 찍기 좋은 오름
오름에 피어나는 가을억새는 전국 억새명소 TOP3에 들어가는 곳이다. 오름의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과 수많은 오름 그리고 바다 위에 떠있는 비양도가 보인다. -오름테마북



새별오름도착하니 사람들이 진짜 많았다.

그리고 진짜 힘들었다.


새별오름에 도착해서 넓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방향으로 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르막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방향에서 올라가 오른쪽방향으로 내려온다.

우리는 잠시 고민했다. 오르막이 너무 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오름 밑에서 어떤 분이 설명해 주셨다.

"이쪽으로 올라가서 저쪽으로 와야 좋아요!"

"갈만해요! 이쪽으로 가야 해요!"

그렇게 우리 가족도 떠밀리듯 가파른 왼쪽 길로 올랐다.

중간중간 잘 오르고 있는 어린이들도 보였지만, 나는 벌써 숨이 차올랐다.

쉼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난 얼마 못 가 지치고 말았다.

나와 율이는 부모님보다 먼저 출발했기에,

둘이 의지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동생과 걸을 땐 항상 동생과 손을 잡고 있다.

항상, 절대 동생의 손을 놓치면 안 될 것만 같다.


너무 지쳐 잠시 멈추며

"율이야! 잠깐만! 같이 가!"외치는데,

뒤를 돌아보니 아득하고, 고소공포증이 없는 나조차 머리가 띵했다.


오르막이 까마득하다는 건,

뒤돌면

내리막이 아찔하단 뜻이었다.


"율아 미안. 멈추지 마! 그냥 가자!"


사람들은 쉬지 않고 밀려들고,

잠깐 멈추자니 내리막이 아득하고,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래도 나름 밧줄로 만든 계단 비슷한 것도 있고, 손잡이도 있다.

소요시간도 비교적 짧다. (오를 땐 엄청 긴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래서 금세 정상에 도착해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걸 보려고 오르는구나!" 싶었다.

이곳에 오르니 사람들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우리도 정상에서 다른 커플사진을 찍어주고, 우리 가족사진을 얻었다.

내려오는 길인, 오름 오른쪽은 비교적 완만했다.

"오른쪽으로 올라갔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올걸!"후회가 들었다.

물론 오른쪽으로 가면 완만한 대신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위에서 본모습도 예뻤지만,

오름의 오른쪽면은 더 예뻤다.

억새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오른쪽이 억새명소였다.

오른쪽으로 올라갔다가 왼쪽으로 내려오면,

억새명소를 앞으로 마주 바라보지 못하고 뒤에 두고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모두들 왼쪽으로 올라갔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온다.

(그럼 오른쪽으로 올라갔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되잖아.(?))


다음번에 또 간다면,

정상에 오르지 않고,

오른쪽에서 억새의 춤을 구경하고,

사진 찍고 돌아올 것 같다.



저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자세히 보면 산 꼭대기에 사람들이 보인다.


새별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억새와, 저 멀리 바다.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조금 내려와 돌아보니,

억새와 새별오름의 모습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부시게 찬란했다.

힘들게 오르지 않아도 되는 완만한 길,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그 옆길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다랑쉬오름에서 느낀 생각이, 새별오름에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굳이 위로 오르지 않아도,

옆으로 돌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괜찮더라고요.

굳이 위로 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어요.>


오름.jpg 오름을 '산'으로 표현한 동생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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