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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쉬멍] 제주도에서 받은 선물

노루와 돌고래 그리고 무지개

by 조현

<오늘 우연히 마주한 순간,

마음에 스며든 선물이 있었나요?>


제주 길 위에서, 나는 선물들을 받았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조용히 내민 선물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람 속, 파도 속, 햇살 속에

숨겨진 선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물은, 때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어떤 선물은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고,

또, 어떤 선물은

마음속에 오래 남는

찰나의 어떤 장면이기도 하다.


나는 제주도에서 여러 가지 깜짝 선물들을 받았다.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미니어처 와인을 받았고,

기념품도 받고,

샴푸를 받기도 했다.


그보다 더 값진 건, '만남'의 순간이었다.


노루를 만나고,

돌고래도 만났다.

또, 바다 위에 떠있는 쌍무지개를 만났다.

모두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었고

잊을 수 없는 장면들로 남아있다.


■ 노루를 만난 곳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처음, 저 멀리 노루를 봤을 때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내가 "산책이 아니라 전시회에 온 걸까?" 싶을 정도로.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옆엔 한국마사회 제주목장이 있다.

그날엔 이곳에,

말 대신 노루가 그곳을 거닐고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가로운 오후,

우리 가족은 조용히 숲길을 걷다가

담장너머 초원에서 풀을 뜯는 노루를 우연히 보았다.


그 이후에도 노루는 몇 번 더 만났다.

특히, 제주 돌문화공원 교래자연휴양림에서는 정면으로 노루를 마주쳤다.


교래자연휴양림

사진을 찍는 동안,

노루가 달아날까

숨소리도 크게 내기 어려웠다.

노루는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내 시선을 받아주었다.

그 짧은 눈 맞춤 속에서

나는 두근거렸다.


그 이후 산책하는 동안 내내

"바스락" 소리에 고개를 들면

어김없이 노루가 있었다.


사실,

교래자연휴양림에선

샴푸도 뜻밖의 선물로 받았다.

교래자연휴양림에선 숲길 걷기 행사를 하고 있었다.

걷기 좋은 명품 숲길로 선정되어

걷기 인증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갔다가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그냥 걷기만 했을 뿐인데 선물이 따라왔다.


'걷는 일 자체가 이미 선물이 될 수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삼다수 숲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교래 삼다수마을 지질트레일'행사를 하는 마지막 날,

코스별 인증샷을 찍으면 선물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는 우연히 그날 그곳을 방문해

미니어처 와인을 받았다.


제주에서는 이런 소소한 행사들이 참 많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

선물이 되어 돌아온다.

제주가 주는 묘한 기쁨 중 하나이다.



■ 돌고래를 만났던 곳

내 핸드폰 지도에는

"돌고래 포인트!"라고 저장된 곳이 있다.

(사실 비밀의 공간이었는데!?!)


행원리에 있는 '오저여'라는 곳인데,

해안도로옆, 바다 가까이에 위치한 곳으로,

산책로도 있어 걷기에도 좋다.

우리 가족은 종종 들르는 곳이다.


앞에는 양식장이 있어, 새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리고 가끔 돌고래가 지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행원리



돌고래를 여기서 자주 마주쳤지만,

항상 사진은 찍지 못했다.

돌고래는 언제나 찰나에 나타나고,

그 짧은 순간을 사진으로 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들른 이곳에서 갑자기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른 돌고래 한 마리.

빛을 머금은 돌고래가 잠깐 반짝였다가

이내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급히 달려갔지만

넓은 바닷속,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사진도 못 남겼다.


이날 저녁,

나는 침대에 누워 메모장에 일기를 썼다.

오늘은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우리 가족의 돌고래 포인트인 행원리에서 예상치도 못하게 돌고래 한 마리가 점프하는 것을 보았다. 재빨리 뛰어가보았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다. 더 이상 돌고래는 못 보았지만, 그래도 멀리서나마 돌고래 점프로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느지막한 오전이었는데, 아마도 혼자 늦잠 잔 돌고래였나 보다. 너를 만나려고 나는 오늘 이곳에 왔나 보다.
2024년 11월 8일


이전에,

온평리환해장성부근

(신양항에서 온평항 사이 해안도로)에서

우연히 돌고래를 만나 영상을 찍은 적이 있다.



사실, 제주도에는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포인트가 많다.

'돌고래 투어'도 있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돌고래'를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는 순간,

아무런 기대 없이

바다를 무심코 바라보다

우연히 돌고래와 마주치는 순간"

더 큰 감동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아주 큰 선물의 순간이자

돈으로 살수도,

계획할 수도 없는

반짝이는 찰나이다.




■ 무지개 사진을 찍은 곳


어느 비가 내린 오후,

하루 종일 흐린 날씨에 마음까지 눅눅해졌던 날.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우중충했다.


별생각 없이 들어간 카페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창밖을 보니 바다 위로 쌍무지개가 펼쳐지고 있었다.



성산마을제단 (보이는 섬은 '우도'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순간

모든 흐린 마음이 맑게 개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늘이 나에게 선물을 건네는 것 같았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삶은
종종 이렇게
우리에게 선물을 건넨다.

노루,

돌고래,

무지개.

값을 매길 수 없는 순간들이

선물처럼 나타난다.



내가 제주도에 두 달 살이를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랬다.

누군가 내게 주신

조용하고 소중한 선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에,

선물을 만난 지금 이 순간이 더 특별하다.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 순간들은 느리게 스며든다.


나는
이 선물 같은 순간들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조심스레 포장하듯
마음속 깊이 새겨놓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언제든
이 소중한 선물을
꺼내어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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