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 김녕에서 바라본 제주의 노을
나는
천천히,
노을에 물든 바다를 뒤로하고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노을이 질 때쯤,
제주도는
아름다운 색으로 물이 든다.
해 질 무렵,
제주도의 색은
한층 다채로워진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푸르던 하늘은 어느새
주황빛으로 번져갔다.
그 빛은 바다에 닿아, 잔잔하게 부서졌다.
하루의 끝은, 그렇게 색으로 말을 건넨다.
우리의 제주집,
이층집은 동쪽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저물어 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동쪽바다에서 해는,
흔적만 남긴 채 스르륵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는 때론,
제주의 남쪽에서
바다 위 구름사이로 해가 동그랗게 잠겨드는 풍경을 보기도 했다.
나는 해 질 무렵을 좋아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해 질 무렵은
핸드폰을 꺼내 가장 많은 사진을 찍는 시간이기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저 멍하니, 지금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노을을 보고 있으면,
나는 종종 유럽배낭여행 시절을 떠올린다.
피렌체의 미켈란젤로언덕에서 본 해 질 녘 풍경.
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게, 강렬했던 순간이다.
그날,
친구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언덕 위에 앉아 해가 지는 장면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주황빛이 번지고,
어둠이 내리며,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던 그때의 정적은
마치 한 장의 오래된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날의 그 풍경,
그날의 그 멜로디,
그날의 그 공기는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풍경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그때만큼 시간이 빠르게 흘렀던 적도 없었다.
제주도에서도 그랬다.
김녕에서, 함덕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해가 저물어가는 순간을 바라보았다.
해 질 무렵, 함덕해수욕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도 함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올레길 19코스에 포함되어있기도 한 함덕해수욕장은,
바다에 난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기 매우 좋은 곳이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서우봉으로 가면
서우봉 둘레길도 있다.
우리 가족은 오후 늦게,
함덕해수욕장부터 서우봉정자가 있는 언덕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멀리 상점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바다는 노을빛을 반사하며 찬찬히 물결쳤다.
저마다의 빛으로 저녁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
노을의 여유를 남기려는 사람들,
버스킹 하는 사람,
그 음악을 지켜보는 사람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곁에서 미소 짓는 신랑.
(함덕에선, 웨딩포토를 찍는 사람들도 많다.)
두 발이 젖더라도
지금의 행복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
그 풍경 속에는 누구나 하루의 끝을 행복하게 맞이하는
환한 표정들이 있었다.
우리 차에는 캠핑의자가 있다.
시월의 마지막날 오후.
우리 가족은 김녕해수욕장 캠핑장 부근에 의자를 펼쳤다.
김녕에는 캠핑장이 있다.
김녕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노지캠핑장으로, 공공캠핑장이다.
어느 한 사이트에서는 '일몰을 바라보며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소개되어 있다.
성수기에는 유료로 운영된다.
하지만
우리는 성수기가 지난 시점이었고,
텐트를 치지 않아서 인지 비용을 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차도 마시고,
책도 보고,
산책도 하며
여유를 즐겼다.
율이는 글씨도 쓰고, 낙서도 하며,
바다를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그 순간,
헬기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헬기가 지나가며,
소리는 점점 커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율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가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위,
검은 점 하나가 천천히 멀어져 갔다.
누군가의 긴급한 시간이,
우리의 평온한 오후를 스쳐갔다.
그 짧은 순간이
내겐,
잊을 수 없는 한 장의 풍경이 되었다.
한동안
내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가을날의 노을빛이었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중산간의 유채꽃 프라자에도,
주황빛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행복해 보이는 커플들이 웨딩사진을 찍고 있었다.
빛은 점점 옅어지고, 바람은 차분해졌다.
제주의 하루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순간이었다.
해가 저무는 시간은,
곧,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임을 의미한다.
다채롭게 빛나던 낮이 끝나고,
포근하고 따스한 밤이 찾아온다.
여행이 끝난다는 것은
어쩌면,
포근하고 따스한 일상의 자리를 되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도,
반짝이던 제주 바다를 뒤로 하고,
편안하고 평범한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낮의 마지막 빛을 담은 노을이 물들듯,
찬란했던 긴 여행의 여운이 스며들며
집이라는 밤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길 시간이 왔다.
마음 한편엔 여전히 주황빛 노을이 남아있다.
잠시 스쳐갔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빛으로.
제주에서 물든 기억들은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