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긴 여행을 끝마치고
여행이 끝나가는 무렵,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로 분주했다.
두 달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정말 현실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두 달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곱씹을 틈도 없이
돌아갈 준비로 바빴다.
출발할 때 그랬듯,
미리 짐을 세 박스나 택배로 보냈다.
인테리어를 새로 마친 집으로 돌아가기 약 일주일 전,
최종 점검을 위해
나는 혼자 먼저 집에 다녀왔다.
새벽 비행기로 가서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
큰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워 떠났고,
짐을 집에 두고 빈 캐리어만 들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나의 느린 별 동생 율이는
돌아가는 걸 아쉬워했다.
그래서 우리는 몰래 짐을 싸야 했다.
자꾸 싸놓은 짐을 자꾸 풀어놓고,
짐을 싸는 모습을 보면 예민해졌다.
그렇게 아쉬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우리는 몰래,
아주 조심스레 짐들을 옮겼다.
인테리어를 새로 했다는 건,
새집에 입주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달 동안 보관해 둔 짐을 다시 옮겨야 했고,
이사나 다름없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돌아가느냐'였다.
동생이 함께 있으면 짐을 옮기기도 어렵고,
누군가는 온전히 그를 돌봐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 제주에 올 때처럼
집이 완전히 갖춰진 다음에 율이가 오는 것이 안전했다.
그렇다면,
"처음처럼 두 명이 먼저 가서 이사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와 함께 들어가야 할까?"
여러 번, 여러 방법들을 고민하던 끝에
아빠가 깔끔하게 결론 내리셨다.
"율이랑 둘이 알아서 가볼게.
먼저 둘이 가서 이사하고 있어."
엄마와 나는 하루 먼저 출발해 이사를 준비하고,
다음날 이사가 끝난 오후 늦게 아빠와 동생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계획이었다.
나는 걱정이 많았다.
"둘이서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더구나 비행기에서 창문 때문에 (7화 참조) 율이는 말썽 부리지 않고 잘 올 수 있을까?"
"집에 간다고 순순히 따라나설까?"
"누나와 엄마를 찾지는 않을까?"
"밥은 잘 챙겨 먹을 수 있을까?"
"비행기를 잘 기다릴 수 있을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데 아빠는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우린 해보기로 했다.
1. 하루 먼저, 짐을 챙겨 차를 제주공항까지 가져가 탁송을 보내고,
엄마와 나는 저녁 비행기로 집으로 간다.
2. 아빠와 율이는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다음날 렌터카로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탄다.
(차는 미리 전날 렌트해 제주 이층 집에 가져다 둔다.)
3. 이사를 끝마친 나는, 탁송으로 도착한 차를 타고 아빠와 율이를 마중 나간다.
이렇게 계획을 세워두고도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초겨울,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제주를 떠났다.
이사 과정이 조금 삐걱거렸지만,
계획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혼자 운전해 공항에 마중 나갔을 때,
무사히 나오는 아빠와 율이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밝은 얼굴로 걸어오는 아빠를 보며,
나는 문득생각했다.
율이가 한 뼘 더 성장했구나.
이젠,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이제는 조금 율이를 믿고 한 발 물러서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빠 최고!
내게, 율이랑 둘이 오라고 했으면,
'못한다.' 했을 것 같다.)
이렇게
집에 오는 다소 복잡한 우리 집만의 과정을 소개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너무나 쉬울 일들이
때로는 우리 가족에겐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가족여행이
나와 같이
장애 형제가 있는
비장애형제 친구들에겐
쉽게 꿈꿀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가족 외식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마저도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나와 같이 발달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형제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족여행은커녕,
혼자 여행조차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제 형제는 소리를 내거든요. 비행기에서 계속 소리 낼 거예요. 그래서 못 가요."
"제 형제는 집이 아니면 잠을 못 자서 여행은 못 가봤어요."
"제 형제는 가만히 있지 못하거든요. 계속 몸을 흔들거릴 거예요. 그래서 외식도 힘들어요."
등등의 이유로.
가족여행은커녕, 가족외식조차 어렵다.
때론 혼자 여행 가는 것조차 망설이는 비장애형제들도 있었다.
"더 나이 들면, 만약에 부모님이 안 계시면,
우린 형제를 돌보아야 하니까 여행은 꿈도 못 꾸겠지?"
"친구들과 여행 가는 것조차
부모님께, 형제에게 죄책감이 들어요. 나만 하고 싶은 거 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
난 그들의 말에
난 쉽게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용기 내세요!"
응원하고 싶었다.
용기 내보세요!
우리 가족은 두 달간의 긴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 끝에 돌아와,
평생 이야기 할 추억이 남았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어렵더라도,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더라도,
조금 힘들더라도
한 번쯤 떠나보세요.
후회만 남을 수도 있지만
그 여정 속에서
조금은 성장한 나 자신을, 우리의 형제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혹시,
조금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그 가족을
여행지에서 만난다면,
마음속으로 살짝 응원해 주세요.
그리고 조금만 배려해 주세요.
그것만으로 큰 힘이 된답니다.
큰 문제없이 집으로 돌아온 그날.
혼자 운전해 공항으로 마중가며
나는 문득 감사했다.
이제 세 살을 막 벗어나 네 살이 되어가는,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율이가
참 고마웠고,
그리고 항상 고마운 부모님께
더더욱 감사했다.
율이야!
율이가 조금은 성장했기에
두 달간의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어.
그리고 율이가 있었기에 우리 가족은 긴 여행을 출발할 수 있었어.
아마 율이가 없었더라면
난 부모님과 동생과 두 달간 여행을 떠날 거라곤 생각조차 안 했을 거야.
율이가
내 동생이라서
항상 고마워.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지내자!
(말썽은... 조금만 부리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게 자주 묻는다.
발달장애인 형제와 함께 여행할 때
식당은 또 다른 큰 벽이다.
우리가 처음,
제주도로 긴 여행을 떠나길 주저하고 고민하고 있었던 때
나는 우연히 '행복하게 사회적 협동조합'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를 수없이 다녔지만 식당은 우리 가족에게도 늘 고민이었고
발달장애인인 동생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식당들을 찾아보곤 했다.
그러다 발견한 '맘 편한 가게 지도'.
제주도에 정착한 발달장애가족들 '행복하게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만든 '발달장애가족들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가게를 소개하는 지도'이다.
https://happilycoop.imweb.me/34
나는 많은 형제들에게 알리고 싶어,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공유했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행복하게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님을 비롯해 조합원님들을 만나 뵐 수 있었다.
그분들의 응원과 조언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그 만남이,
두 달이라는 긴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두 달간의 여행은 끝났지만
가족과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마음 한편에 남아 오래도록 빛났다.
조금 느려도, 조금 달라도 괜찮다.
함께, 어떤 길도 걸어갈 수 있었다.
율이가 있어 시작할 수 있었고,
율이가 있어 완성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조금 용기 내 걸었던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믿고, 조금 더 단단해졌다.
두 달 동안 여행이 남긴 마음들이
앞으로 마주 할 모든 길 위에서도
우리의 발걸음을 따뜻하게 비춰줄 것이다.
두 달의 제주,
느린 별 동생과 함께한 노고록 길.
천천히 걸어서 좋았다.
(느린 동생과 함께, 제주에서 많이 많이 놀며, 쉬며, 걸으며 두 달을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