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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Aug 25. 2018

사는 건 어쩌면 가챠 돌리기

가챠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게 나왔다고 후회하진 않으니까

모든 일은 연구처럼, 그렇게 가설에서 시작된다. 이게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입증할 단서들을 찾다 보면 가설이 맞다는 걸 확인하거나 혹은, 가설이 틀렸다는 걸 배울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나를 마주한다. 틀린 가설도 그 나름대로 유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그 틀린 가설이 틀린 이유를 더욱 명확히 증명하고자 애쓰는 편이다. 물론 틀린 걸 알면서 맞았다고 믿고 싶어서 맞은 것처럼 보이도록 단서를 채우는 사람도 있다. 그걸 소위 '답정너'라고 한다.


사실 가설을 세우고 입증하는 방식으로 살 필요는 없는데 이런 내가 스스로 피로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난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 그러니까 가설을 세우는 것조차 무의미한, 그래서 어쩌면 굉장히 사소하고 비논리적인 영역 앞에서 고장나버리는 사람이니까. 비논리적 영역에서 고장나는 나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마는 사람이니까.


그게 반복되니까 내가 세웠던 가설이 맞았을까, 틀렸을까에 대한 판단마저 어려워지고 말았다. 가설이 틀렸다면 수정해서 나은 결과를 도출하든지, 가설이 맞았다고 믿고 싶다면 단서를 꾸며서 그럴듯하게 포장이라도 해야 하는데 문득 맞았으면 어쩔 거고, 틀렸으면 또 어쩔 건가 싶은 거다. 이미 단서들을 찾는데 지쳐버렸고, 아니 단서를 찾기조차 싫어졌고, 가설이 틀렸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 뭘 어떡해야 하는 거지.


그래서 이 모든 걸 그냥 가챠 돌리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잔돈 얼마 내고 가챠 돌려서 가지고 싶은 게 안 나온다고 돌린 걸 후회하지는 않는데, 가지고 싶은 게 안 나왔다고 그게 나올 확률을 계산하고선 돌리는 건 아닌데. 나는 왜 아직 동전도 안 넣고선 가챠 앞에서 혹시나 내가 원하는 게 나오지 않을까 망설이고 동전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가 싶다. 뭐가 나오든 동전 넣은 걸 후회하지 않기로만 하면 어쩌면 좀 더 쉬워질 수도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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