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작은 기적, 맥모닝

by 별밤

* 정신질환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회고가 있습니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열린 커튼 틈으로 부드럽게 새어들어오는 푸른 새벽빛을 받으며 눈을 뜨는 아침, 이라면 더없이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한참 거리가 멀었다. 나는 뻑뻑한 눈을 주먹으로 비비고, 머리가 부스스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을 끄고 암막커튼을 치고 누워 있은 지 두 시간째.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나의 불면은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이 과도한 걱정과 불안에서 비롯됐다. 베개에 뒤통수를 묻으면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걱정, 오래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후회, 오늘 하루를 되짚으며 저질렀던 과오와 실책을 모조리 돌아보기까지. 많은 사람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정도가 심해서, 강박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일주일에 한 번 약을 받았다.



하지만 손바닥에 조르륵 늘어놓은 약을 아무리 삼켜도 가슴에 걸린 덩어리는 넘어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숱한 따돌림과 편가르기를 당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을 때? 학교 가는 길 옆차의 앞유리에 부딪치는 벚꽃잎을 보고 속으로 부럽다고 생각했을 때? 우울이 눈 뜨고 있는 시간을 괴롭게 만든다면, 불안은 밤에도 휴식을 취할 수 없도록 베갯머리에서 나를 괴롭혔다. 네가 지금 잠을 자고 있을 때냐고. 쉴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 아우성치고 있는 듯했다.



자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핸드폰으로 어제 사둔 만화를 읽고 있을 때였다. 요의가 느껴졌다. 그럼 얼른 화장실로 가지 않고 뭐 하느냐, 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밖에서 아까 전부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니, 지금 나가면 반드시 엄마랑 마주칠 것이다.



정신과 다니는 딸 탐탁치 않게 여기는 엄마로 우리 엄마를 착각해선 곤란하다. 엄마는 나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면목없는 거다. 내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나를 엄마는 소중한 보물처럼 아끼는 게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결국 방문을 연 건 침대에 오줌을 싸는 게 한숨도 못 잔 것보다 불효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안방으로 가자(화장실은 안방에 있다) 화장대 앞에서 로션을 바르던 엄마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이제 일어났나?

……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질문을 바꾸었다.



한숨도 못 잤나?

응.



밤새 뜬눈으로 지새며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짙은 피로가 되어 내 얼굴에 고여 있었을 것이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나는 며칠째 집 밖을 나가지 않는데다 수면제를 처방받고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딸과, 그걸 보는 엄마의 심경에 대해 생각했다. 치솟는 자괴감이 목구멍을 때렸다.



안경을 끼지 않은 맨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엄마가 뭐라도 먹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배가 부르면 잠이 올지도 모른다면서. 나는 마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뭘 밀어넣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뭘 좀 먹어야지… 하고 뒷머리를 만지던 엄마가 갑자기 눈을 빛내며 물었다.



맥모닝 우떻노? 지금 얼른 나가서 사 올까?

맥모닝?



그러자 머릿속에서 뭔가가 반짝인 것 같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른 아침이 아니면 못 먹는 맥모닝은 평범한 일상 밖으로 나온 것 같은 설렘을 준다. 에그 맥머핀이나 해쉬브라운도 맛있지만, 진짜 특별함은 버터와 시럽을 바른 핫케이크에 있다. 따뜻하고 푹신하고 달콤한 핫케이크를 생각하자 바싹 말라있던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여태껏 일찍 못 일어나서 먹지 못했던 걸 이렇게 먹게 되다니. 밤을 새는 것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좋아. 맛있겠다.



대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었던 모양이다. 엄마의 얼굴까지 덩달아 밝아졌고, 얼른 나가서 사 오겠다며 채비를 서둘렀다. 나는 신발 신는 엄마를 현관까지 배웅했다.



그리고 20분쯤 뒤에 아직 따끈따끈한 갈색 종이봉투가 내 품으로 안착했다. 함께 온 길쭉한 컵 안에는 따뜻한 코코아가 담겨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들뜨고 설레었다. 핫케이크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 그 안에 든 단맛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문단속 잘하고, 전화해래이.



내 모습을 지켜보며 웃던 엄마가 가방을 챙겨들고 다시 문간에 섰다. 나는 핫케이크를 재빨리 바닥에 내려놓았다. 언젠가부터 출근하기 전에 한번 꼭 끌어안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시작은 나였지만,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를 안아주고 싶어서였는가, 안기고 싶어서였는가.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딱 하나. 둘 다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거.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나는 마른 엄마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엄마는 나를 닮아서 뭐든 최선을 다하지만, 그러다 지쳐 쓰러질지도 모르니까. 모든 것이 소진되는 기분이 어떤 건지 내가 잘 아니까…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아쉽게 떨어졌다. 나는 문 틈으로 엄마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바닥에 놓아둔 종이 봉투를 집어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다고. 버틸 수 있다고. 방금 그걸로, 지금 이 팬케이크로, 오전의 세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면, 일상 속의 소중함을 품에 끌어안으면, 점점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또다시 새소리가 들렸다. 말갛고 깨끗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쳐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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