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성공적인 브랜드 이미지의 예시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코카콜라를 댈 것이다. 코끝이 뭉툭하고 볼이 붉은 산타. 그의 곁에 앉아서 충직한 눈길을 보내는 북극곰과, 그들의 손에 공통적으로 들린 잘록하게 주름진 에메랄드빛 병 하나.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여름에 마시는 음료의 상징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얼음처럼 차가운 콜라 한 잔이 가진 이미지는 그 밖에도 많다. 아스팔트를 녹일 것처럼 뜨거운 태양, 뮤직박스의 노래에 맞추어 비보잉이나 농구를 하는 키 큰 소년들, 주근깨 가득한 뒷목이 땀에 흠뻑 젖었을 때 잔에 부어지는 탄산음료. 거품 주위에서 잘그락거리는 얼음은 여름과 청춘을 비추고, 목으로 넘기는 순간 무더위의 환상과 짜릿한 기포가 입천장을 때리며 부서진다.
내가 콜라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멋진 음료가 지닌 마법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산에 있건, 때가 눈발이 펄펄 날리는 한겨울이건 상관없이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덥고 반짝이는 여름의 한복판으로 진입할 수 있다. 밝고 생생한 이미지가 온몸에 깃들며 활력을 선사하고, 강력한 탄산이 지닌 각성 효과로 두뇌도 팽팽해진다.
콜라의 또다른 매력은 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점에 있다. 외국에서 잔뜩 기진맥진했을 때, 지치고 외로워서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면 비행기 티켓을 끊는 대신 콜라에 의지했다. 괴로운 일이 있어도 서리 같은 물방울이 맺힌 새빨간 콜라 한 캔이 있으면 조금은 더 견딜 만하다는 걸 배웠다.
콜라와 함께한 추억들이 있다. 가족 여행으로 유럽에 갔을 때 넓은 파라솔 아래서 마셨던 콜라를 기억한다. 패키지 여행 중의 자유시간. 떡 벌어진 체격에 얼굴이 붉은 외국인들 속에서 우리 가족은 국제 미아라도 된 것처럼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싱글싱글 웃는 직원이 가져다준 콜라는 묵직한 컵에 빨대와 함께 레몬 조각이 꽂혀 있었고, 한 입 마시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탄산이 강했다.
베트남에서 마신 콜라도 기억한다. 그때 나는 공황 때문에 근처의 마사지숍으로 옮겨져서 팔걸이가 달린 긴 의자에 누워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머리가 핑핑 돌았고, 손가락 끝까지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위를 맴돌며 안절부절 못하던 부모님이 뭐라도 먹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간신히 떠올려낸 것이 바로 코카콜라 한 캔이었다.
kfc 치킨과 콜라를 들고 오사카의 호텔 앞에서 노숙할 뻔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메시지로 받은 비밀번호로 문이 열리지 않는데, 사람이 없는 무인 호텔이라서 그야말로 언니와 둘이 거리에서 밤을 샐 뻔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가까스로 주인과 연락이 닿아 들어갈 수 있었다. 식은 닭다리를 허겁지겁 뜯으며 들이킨 콜라는 그야말로 깊은 안도의 맛이 났다.
이렇게 깊은 관계를 맺은 음식이 하필이면 몸에 나쁜 콜라라는 데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콜라 사다 달라는 부탁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우리 엄마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있어 콜라는 영원한 것의 상징이다. 주위가 나를 두고 홀연히 멀어진 느낌이 들 때, 거칠고 막막한 세상을 쫓아가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힘과 위안이 되어 주었던 삶의 동반자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 언제나 상비되어 있는 콜라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청심환 한 알과도 같다. 콜라를 빽으로 삼아 나는 언제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