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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Apr 18. 2017

나는 이런 일을 할 줄 몰랐어요.

뜻밖의 능력.

드디어 일을 끝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을 하고 행복한 일요일, 월요일 이틀간의 휴식을 맞이할 차례였다.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패턴의 휴식이지만, 내겐 평범하고도 소중한 이틀의 휴식이었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월요일 밤 열한 시였다. 일요일을 통으로 일하고, 월요일 밤이 돼서야 비로소 일이 끝났다. 내 주말이 고작 1시간을 남긴 때였다.


 "아니, 천문대에 일하면서 집에서 할 일이 뭐가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집에서 할 수 없는 일이 도대체 뭔가요?"


 사실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천문대에서의 일이란 그저 별을 보여주는 직업 정도로 생각했다. 찬란한 녹색 레이저를 쏘아대며 낭만적인 별자리 이야기를 쏟아내는 일 말이다. 몸집만 한 망원경을 휙휙 돌려내며 밤하늘을 탐닉할 줄 알았던 나는, 쉬는 이틀 내내  책상 위에서 일을 마쳤다.


 디자인이었다. 내가 하는 일의 많은 시간은 일러스트를 하는 데 사용된다. 교육에 필요한 교재나 교구를 만드는데 만드는 일이었다.


아니 학창 시절 내내 미술 실기 꼴찌던 사람이 무슨 디자인인가요??


그러게나 말이다. 미술보단 체육이 좋고, 그림보단 음악이 좋았으면서 무슨 디자인. 그런데 일이라는 게 꼭 필요하면 하게 되더라는. 입사 후 3년 동안 지옥훈련의 결과, 그래도 나름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평생 관련 없던 디자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오로지 아이들 때문이다. 내가 만든 교재나 교구를 보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 이것이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어머니가 행복한 미소를 띤 이유였구나' 싶다. 몇 날 며칠을 고생해 등이 딱딱해지고 가시지 않은 피로를 안고도, 아이들이 웃음을 만나면 그렇게 좋았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사실, 한번 이렇게 진을 빼고 나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담부턴 적당히 하자. 사실 아이들은 기존의 것들로도 충분하잖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더는 힘들지 말자며. 사서 고생하지 말자며.

 하지만 그날의 결심은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했던 그날과 비슷한 무게로 다가온다. 잠시 한눈을 팔면 어느새 아이디어를 공책에 끄적이고 있다. 그러고 나면 여지없이 시작된다, 방구석에서의 밤하늘 일이.


그렇게 일해서 얻는 게 무엇이냐고요?

웃음이요.
아이들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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