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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이 밥먹여주니
by 조승현 Sep 26. 2017

미국 '개기일식', 그 짜릿한 체험.

일식병에 걸려버린 것 같다.


"개기 일식이야! 그것도 미국에서!"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다. 이어 대장님이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개기일식을 보려면 203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구,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언제 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


 사실이었다. 개기일식은 세계 어딘가에서 일 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난다. 다만 지구의 70%는 바다고, 비행과 차를 통해 현실적으로 갈만한 곳은 채 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처럼 여행 루트가 깔끔하고 간편한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이런 매혹적인 여행을 어찌 놓칠까.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모든 직원이 함께.


 미국에 전 세계의 천문 팬들이 몰려든다는 말은 과연 과장이 아니었다. "모든 길이 다 막힐 겁니다" 라던 기사가 현실로 나타나 있었다. 비행기에 내려 일식 장소로 가는 내내 모든 전광판엔 같은 안내가 번쩍이고 있었다 '내일 오전 일식, 극심한 정체'.

 1년을 준비해 떠난 여행이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길 위의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긴 여정 중이었다. 그것은 전 세계를 열광시킨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이 아니었다. 한 편의 연극이었다. 주인공은 존재감 제로를 자랑하던 태양이었고, 역할은 가려짐이었다. 것도 수백 년 만에 비로소 같은 극장에서 재개봉한 한정판!   

개기 일식 진행 과정  (c) 판교 어린이 천문대 강사 신용운

 개기일식은 여러 가지 운이 받쳐줘야 볼 수 있다. 비나 눈은 물론이고 구름만 끼어도 볼 수 없다. 태양을 가릴만한 산이나 빌딩도 없어야 하고, 시간도 정확히 맞춰야 한다.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사고를 막기 위해 도로와 교통을 통제하기도 한다. 지독하게 운이 없는 사람은 대여섯 번, 그러니까 십수 년 일식을 쫓아다녀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세상에는 '일식'병에 걸린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개기일식이 있을 때면 세계 어디든 달려간다. 바다던, 아프리카던, 분쟁지역이던. 대개는 편하게 조직되는 일식 투어에 참여하거나 여행을 겸해 떠나지만, 마니아들은 일식 당일에만 현지로 날아가 관찰한다.


 2009년에 중국에서 일식을 본 총대장님 [어린이 천문대 총책임자]님은 일식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날 드는 감정은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보단, 작은 생물로서 드는 전인격적인 체험이었다고 했다. 세계가 둘로 나누어졌다가 다시 합쳐져 우주 속 천체로써의 감각이 비로소 드는 것이다.

 옆에 계신 우 대장님도 거들듯 말했다.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뉜다. 일식을 본 자와 안 본 자." 일식은 체험이 아니라 변화였다. 빛의 소멸은 또 다른 류로써의 탄생과 같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본 자가 되기 위해선 돈, 시간, 운, 이 3박자가 고루 맞춰져야 한다. 



 일식 관측을 위해 베이스캠프로 삼은 곳은 시애틀에서 4백 킬로미터 정도 남쪽에 위치한 세일럼이었다. 아주 시골 동네로 슈퍼 몇 개가 간간히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자연의 비범함은 마을의 덩치와 관련이 없었다. 개기일식은 현지시간으로 오전 11시쯤 일어날 예정이었다. 

 일식 당일, 모두가 잠을 설쳤다. 지워지지 않는 도로의 '극심한 정체'가 떠올라 새벽 5시에 일어나 출발하기로 했건만 긴장한 탓에 잠이 쉬이 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 '햄버거'게임이라며 친구 네댓 명이 겹쳐졌을 때와 같은 피로와 압박에 눌려있으면서도 눈을 뜨니 네시였다. 새벽 네시.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모두 일어나 있었다. 극도의 긴장은 인간의 기본 생리도 조절했다. 덕분에 한 시간이나 일찍 길을 나섰다.


 "망했어. 흐림이야!". 하루 전 까지만 해도 '맑음'이었던 예보가 당일에 '흐림'으로 바뀌었다. 이 말은 단 하나만을 의미했다. '일식을 볼 가능성도 흐림'.

 이렇게 날릴 순 없었다. 일 년간의 노고와, 11시간의 비행과, 수백만 원의 경비가 '흐림' 한방에 날아가게 둘 순 없었다. 닥치는 대로 검색을 시작했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도시들을 나열하고, 일일이 날씨 대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적당한 도시를 찾았다. '마드리스'. 천문인 10만 명이 모인다던 손톱만 한 동네였다.

 당장 운전대를 잡아 틀었다. 구름을 피해야만 했다. 자연을 이길 순 없지만 고를 순 있었다. 차와 기대로 가득한 고속도로 위에서 우악스럽게 그곳에 다 달았다. 그리곤 비범한 변화의 순간을 기다렸다.



 나는 부분일식을 본 적이 있기에, 개기일식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체험자들은 한결같이 '완전히 다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태양의 얼굴이 손톱만큼이라도 남는 부분일식 동안은 일상 세계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나 개기일식이 되는 순간, 세계는 변모한다. 그것은 또 다른 세계이며, 그 세계는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러했다.



 태양이 검게 드리웠다. 둥근 제 몸이 달에 삼켜지자 세상이 정지했다. 시간이 멈췄고, 새들도 몸을 낮췄다. 감춰버린 빛의 자취 뒤로 장엄한 자연이 드러났다. 신비로움이 또각또각 눈으로 걸어 들어왔다가는 가슴을 지나 경이로움이 되었다. 이내 소름이 되어 팔에 붙었다가, 탄성이 되어 아! 소리를 피고는 입 밖으로 흘렀다. 충격적인 광경은 두려움이 되어 주변을 다시 또각또각 걸었다. 

 태양은 자신의 위엄을 아는 것 만 같았다. 400배나 작은달이 제 앞을 가려도 그저 묵묵히 빛을 뿜었다. 하나, 둘, 오십, 육십. 제 빛을 반이상 잃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달의 그믐보다 더 얇은 몸만 남겨졌을 때도 여전했다. 서늘함이 드는 빛의 도피는 밤과 거리를 좁혔다.


 검은 구멍에 삼켜지듯 달에 모든 빛을 빼앗기자, 공기는 차가웠다. 찬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하늘엔 빛을 잃은 태양이, 희고 환상적인 광채를 내어놓았다. 코로나였다. 한낮에 별이 떴고, 사람들의 마음엔 경이로움이 떴다.

 빛과 밝음이었던 태양이 어둠이 되었다. 암흑에 가두어졌다가 이내 소생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비견되지 못했다. 하늘이 선물한 자연에 눈을 맞추자, ‘자연’스러움의 의미는 곧 ‘두려움’이 되었다. 태양은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일식을 보기 위해 열한 시간의 비행을 했고, 이틀간 두 시간만 잤으며, 1년이 넘는 시간을 준비했다. 노력과 시간으로 다져진 고단함이 2분에 응축해 멈췄을 때, 나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려진 태양 구석으로 빛의 뭉치가 터져 나오자, 땅은 다시금 빛을 되찾았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이제야 진정으로 개기일식을 알았다고.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되어도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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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천문학이 밥먹여주니
아이들에게 천문학을 가르치는 별 선생님이 책을 읽으며, 세상을 읽으며 남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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