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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Nov 04. 2017

나는 어플보다 나은가.

천문대 강사로서 만난 어플

핸드폰에 ‘별자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그것을 실행해 하늘에 비추면 그곳에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 별자리는 어떤 모습인지 적당한 그림이 띄워진다. 별자리 설명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설명서가 필요했다. 대학을 갓 나온 졸업생에게는 별자리 지식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보통 없다. 천문학과는 별자리를 위주로 공부할 일이 없다. 그래서 성도(별자리 지도)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밤하늘 아래 섰다. 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별들을 클릭하니 놀랄 만큼 다양한 정보가 쏟아졌다. 얼마나 멀리 떨어진 별인지, 온도는 어떤지, 주변에 다른 별이 있는지, 어떤 성분을 포함하는 별인지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진과 그래픽도 많았다. 나는 그 천 원짜리 애플리케이션을 보며 ‘내가 이것보다 나은가’를 고민했다. 아무리 따져봐도 더 나을 게 없었다.


 점점 세상이 변하고 있다. 집 전화기가 사라지고 배달 음식도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한다. 단돈 5만 원을 주고 산 인공지능 스피커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 좀 틀어주고, 에어컨 좀 켜” 하고 말하면 내가 즐겨 듣는 노래와 거실의 에어컨이 작동된다. 핸드폰에 대고 이야기하면 어느 언어로든 즉시 통역된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나는 별자리 어플과 마주 보았다. 자연스레 눈이 아래로 깔렸다.

 소설 작가 김영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힘은 스토리텔링에 있어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얼마나 즐겁게 이야기를 전달하느냐가 인간이 가진 힘이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문대를 찾는 이들은 ‘정보’를 위해서 오지 않는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지만 그것이 단편적인 정보와 진실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적당한 책 한 권을 던져주면 될 일이다.

 밤하늘을 수놓는 많은 별자리와 별들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보다 설명이 필요한 지식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야구와 같다. 야구를 처음 본 사람은 야구에 썩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룰이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공을 던지고 치면 되는 줄 알았더니만 보크니 파울이니 하는 다양한 룰이 존재한다. 대여섯 가지의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가 있는가 하면 직구만 던지는 투수도 있다. 무언가를 깊게 즐기기엔 알아야 하는 게 꽤 많다.

 천문학 강사의 역할은 처음 야구장을 찾은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과 같다. 세 번 스트라이크가 되면 아웃이 된다는 간단한 사실부터, "저 타자는 발이 아주 빨라. 작년엔 도루를 제일 많이 했던 타자지. 그렇기 때문에 상대편이 도루를 조심해서 플레이하고 있어", 하는 특성까지도 모두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재미와 관심을 얻어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밤하늘은 그런 식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식보다는 이야기가 중요했다. 딱딱한 지식 몇 알은 사람들에게 그저 튕겨져 나왔다. 아무리 흥미로운 분야라도 부드러운 이야기 몇 개를 골라 알맞게 선물해야 했다.

 방대한 지식의 축적 앞에서 나는 방향을 몰랐다. 백과사전을 흡수했고, 별 이름을 외웠다. 딱딱한 지식 알갱이들을 흡수하며 ‘그것이 진정으로 우주를 아는 길’이라고 자부했었다.

 다시 화면 속 애플리케이션을 바라보았다. 1000원짜리의 지식이 4000만 원을 투자하고 얻은 지식보다 훨씬 방대했을 때, 허탈함과 속상함이 동시에 부풀었다. 나의 방향은 인공지능과의 지식대결이 아님을 떠올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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