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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r 08. 2020

연인이 가져오는 세계는 거대하다

 연인과 나는 여러 번 싸웠다. 가끔은 싸웠던 얘기를 곱씹다가 한 번 더 싸웠다. 빵을 사다 주기로 했는데 까먹어서 싸우고, 명령하듯 말한다고 싸웠다. 선물을 사달라고 해서 싸웠으며, 선물을 사주다가도 싸웠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가 되고 보니 개와 고양이처럼 많은 게 달랐다. 내가 원하는 연락의 빈도와 그녀가 바라는 빈도가, 팔짱을 낄 때 원하는 팔의 각도가,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투입하는 노력의 강도가 같지 않았다. 부스러기 같이 작은 차이들은 금세 덩치를 키워 커다란 다툼 거리가 되었다. 이리저리 구르며 나와 그녀를 뭉갤 듯 위협했다.


 게다가 우리는 싸우는 방식 때문에 더 다퉜다. 나는 끊임없이 대화하자며 불화살을 쏘아대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얼음 벽을 치고 시간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숨은 곳으로 폭풍을 몰고 가면 그녀는 고개만 뺴꼼히 내밀고 말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줘". 그러면 나는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내가 준비한 불화살에 스스로가 홀라당 타고 만다. 그리곤 장렬히 전사하며 속없는 소리로 항복을 선언한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말과 행동이 실수 투성이다. 그녀의 습관과 규율을 나에게 맞추지 못해 안달이다. 그녀가 정해놓은 선을 못 본 척 훅, 침범하기도 한다.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는 말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연인이 가져오는 새로운 세계는 거대하다. 심지어 완결되어 있어 완전하게 이해할 수도 없다. 구두를 만드는 장인처럼 열심히 두드리고 닦아야 고작 한 줌의 광 같은 이해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만남은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다. 나는 덕분에 덜 편협하고 더 다양한 세상을 살아간다.

 

 부모를 떠나 산지 십 년이 넘었다. 회전 초밥처럼 자동으로 배달되던 어머니의 밑반찬이 끊겼다. 한 달에 한 번씩 고향으로 가던 발걸음은 명절을 채우기도 벅차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구속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한다는 게 좋았다. 

 그러던 중 그녀를 만났다. 누군가의 세계를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필 수밖에 없다. 선택을 공유하고 각자의 세계에 낸 길 중 가장 가까운 길을 골라 함께 걷도록 노력해야 한다.


 6500만 년 전, 지구에 충돌한 혜성은 공룡에게 멸종을 선물했다. 공룡이 점령하던 지구는 작은 포유류들의 세상이 되었고, 포유류는 오랜 시간 진화하며 인류가 되었다. 지적 인류는 거대한 충돌로 태어난 것이다. 만약 그 충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똑똑한 지능을 가진 지적 공룡으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다행이다. 집채만 한 책을 읽는 공룡이나 패션 센스가 꽝인 공룡으로 거듭나지 않아서.

 우리는 지겹도록 싸우고 화해한다. 반복해서 용서하고 꾸준히 실망한다. 끊임없이 충돌하며 서로의 기대를 멸종시킨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이 새로 태어날까. 이해였으면 좋겠다. 서로를 향한 기대와 용서 역시 끊임없이 진화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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