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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r 05. 2020

그렇다고 달에 갈 수는 없으니까

 매일 쇠질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1년에 40만 원쯤 되는 회비를 내고 무거운 철덩이 따위를 든다. 헬스다. 매일 '이젠 몸짱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거울과 맞서지만 놈은 매정하다. 덤도 보너스도 없이 딱 내가 가진 만큼만 보여준다. 근육을 몇 덩이 더 붙여서 반사하는 거울은 어디 없나요?

 몇 년 전 수영을 배울 때, 수영 강사가 말했다. "여러분 사실 말이야 바로하지만, 헬스 그거 돈 내고하는 막노동 아닙니까? 열심히 수영을 하세요!"

  그다음 주에 수영장을 그만뒀다. 헬스를 모욕해서 끊은 것은 아니다. 수면에서 나아가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닥과 수면 사이쯤에서 허우적대는 통에 실력에 한계를 느껴서였다. '음파 음파' 하며 유연하게 어깨를 돌리는 수영보단 역시 '후하 후하' 센스 없이 밀어대는 헬스가 나와 더 잘 맞는다.


"형, 나  PT 끊었어"


 친한 동생 K가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어깨와 끝을 모르고 거대해지는 뱃살에 대항하겠다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길래 개인 PT를 추천해 주었더니 냉큼 시작했단다. 첫 수업을 마치고 만난 그가 해맑게 물었다.


"PT 받다가 토했는데 괜찮은 거 맞아?"

나는 짐짓 태연한 척을 했다.


"응. 다들 한 번씩은 토해"

"형도 토했었어?"

"당연하지. 스쿼트하다가"

"아, 그럼 나도 토할만하네"


  K는 고개를 멈칫거리며 원치 않은 진실을 마주한 표정을 지었다. 헬스 중 구토를 뱃멀미하듯 반복하는 줄로 믿는 눈치였다. 하긴, 헬스장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앙상한 돛단배 같은 몸을 이끌고 항해 중이지 않은가. 얼마 가지 않아 이딴 걸 왜 돈을 내고 시작한 걸까,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했는데 어째서 온몸이 더 아픈 걸까, 하며 구토와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들 것이다.

 뭐라도 대는 양 늘어놓았지만 사실 내 몸은 아이스크림을 닮았다. 잡초처럼 무엇도 주지 않았는데 무럭무럭 자라는 뱃살과, 끊임없이 단백질 셰이크를 들이부어도 줄어드는 허벅지까지. 내가 바라본 거울 속에는 늘 거대한 수박바가 서있다.

달 궤도에서 바라본 지구 (c) 아폴로 8호 우주 비행사 William Anders -NASA

 몸이 좋아지지 않는 이유는 꾀를 부려서가 아닌가 싶다. 무거운 쇳덩이를 드는데 피 같은 월급을 내어놓고, 어떻게 하면 덜 힘들까를 고민한다.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에게 답이 있나니. 결국 나는 방법을 찾았다. 열심히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덜 힘든 방법이 있었다. 헬스장을 달에 차리는 것이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1/6이니 달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몸무게가 줄어든다. 무려 1/6로. 노력 없이 체중계 위에 깃털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바벨을 120kg 들어도 20kg을 드는 노력만 하면 된다. 이런 계산을 하는 걸 보니 몸짱이 되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달나라에 갈 수 없는 나는 지구에서 열심히 운동 중이다. 다이어트에 완벽한 환경을 두고 생각보다 강력한 지구 중력과 살아야 하는 게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푸른 행성에서 태어났고 이 순간에도 입속엔 과자가 가득한 걸... 그러니 내일도 헬스장에 간다.

 선언한다. 나의 몸은 꾸준히 역대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지만, 이 원고가 책으로 나올 때쯤이면 78kg의 멋진 근육질의 남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물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럴 줄 알았던 것만 빼면, 이건 정말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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