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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r 04. 2020

고향 집의 송사리

"아들! 엄마 물고기 키워"


 어머니가 난대 없이 물고기를 키운다며 자랑하셨다. 들여다보니 국밥이 5인분도 넉넉히 담길 만큼 커다란 그릇에 멸치만 한 고기가 수십 마리 있었다. '많이 심심하신가? 송사리를 다 키우시네'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멍하니 물고기를 쳐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반쯤 정신을 놓고 가만히 눈동자로 녀석들을 좇았다.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았으나 왠지 집중하게 되었다.

 익숙한 고향집에서 낯선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었다. 편안함과 고요함 사이에 불쑥 생기가 뚜벅뚜벅 걸어오면 말했다. "고향 집에 좀 자주 오는 것은 어떤가?"


 진실로 그랬다. 스무 살 이후, 고향 집은 멀었다. 거리보다 마음이 멀었다. 동생 방이 되어버린 내방을 부정했다. 침대 없이 소파에서 자야 하는 현실이 불편했다. 평소 10시에 일어나는 천문대 강사를 깨워 이른 아침밥을 주는 정성에 반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향 집은 나의 집보단 부모님의 집이 되어갔다.

 그런데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를 조그만 물고기 떼에 집에 생기가 확 돈 것이다. 말도 없이 국밥 그릇을 도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집의 주인은 나도, 부모님도 아닌 송사리 떼가 되었다.


 달이 뜨던 어느 밤이었다. 아이들과 천문대 옥상에 올라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산 위로 나무들이 삐죽삐죽 서있었다. 산 등성이가 마치 나무 가시를 등에 맨 고슴도치 같았다. 달은 그 뒤에서 잠자코 떠올랐다. 아쉬운 것은 나무와 잎에 가린 달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가려진 달은 보던 아이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대박. 말도 안 돼! 이렇게 이쁘다고?"


 달을 3년 동안 본 아이들이었다. 달쯤은 망원경을 발로도 툭, 차서 맞출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더 새로운 천체를 내어 놓으라며 내 멱살을 쥘 것 같은 아이들이, 달은 이제 지겹다던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쌤, 이런 걸 왜 이제야 보여주세요, 너무 이쁘잖아요!"

 슈퍼문도 월식도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날의 달이었다. 그 달이 나뭇잎에 가려지고 산에 걸치자 다른 것이 되었다. 아이들의 환호를 보며 생각했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가 있을 때구나. 달이 더 크고 밝아야 하는 게 아니구나.


 달을 보며 웃음 지은 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늘 먹던 삼겹살 대신 조기를 구웠다. 세 마리가 영롱하게 누워 은빛 윤기를 뿜었다. 별 의미는 없었다.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다. 작은 송사리 떼의 움직임에도, 가려진 달로도 뿜어졌던 생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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