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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Apr 06. 2020

그의 자동차를 기다린다

 집 앞 골목길엔 음식물 쓰레기 통과 자전거들이 지뢰처럼 깔려있었다. 그 길을 차로 통과하자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우와, 운전 진짜 잘하네. 나였으면 내비게이션에 바로 카센터를 찍었을 거야"

 하지만 운전을 잘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훌륭한 승차감이 곧 실력이라는 사람도 있고 주차를 테트리스처럼 해내는 게 중요한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엔 장거리 운전을 하는 사람이 고수 같다. 대시보드에 붙은 끄덕이 인형처럼 눈만 몇 번 껌뻑이며 부산까지 가버리는 사람. 그런 면에서 나는 완벽한 하수다. 운전을 오래 하는 게 너무 힘들다.


 부산까지 가던 길은 지옥이었다. 돼지국밥을 외치며 운전대에 올랐지만 호기로움의 고작 30분이었다. 몸은 급속도로 늙어갔다. 눈이 침침했고 허리가 들썩였다. 몸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 놈아 차에서 그만 탈출하라고". 

 친구들과 게임을 시작했다. 영화 이름을 댔다. 끝말잇기를 했다. 비밀 얘기도 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거대한 고속도로 세계에 나는 처절히 굴복하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문 앞에서 녹아내렸다. 두 번 다시 돼지국밥을 먹으러 부산에 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내 몸이 고함쳤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정말이지 운전을 싫어한다. 바퀴 달린 알루미늄 상자에 갇혀 몸뚱이의 위치를 바꾸게 싫다. 어째서 고등 인류가 구멍 뚫린 쟁반 같은 핸들 따위를 돌리는데 시간을 써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전기 파리채를 멍하니 휘두르는 게 더욱 생산적인 것 같다. 세상에는 드라이브라고 불리는 자동차 격리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그러나 나는 어쩌면 다시 차로 부산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영웅 일론 머스크가 또 하나의 역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화성에 인류를 정착시키겠다는 그가, 교통 체증이 싫다며 지하에 초고속 터널을 뚫고 있는 그가, 무려 자율 주행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핸들이 없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먼발치에서 그의 뒤통수 조차 본 적 없지만 나는 일론 머스크를 믿는다. 그는 전 세계에 인터넷을 공급하겠다며 수 만개의 인공위성을 띄우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섹시한 전기차도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믿음의 원천이 그의 업적이나 능력 때문은 아니다. 동영상 한 편 때문이었다.

착륙하고 있는 팔콘 헤비의 보조 로켓 (c) National Geographic Korea
로켓 발사 성공에 환호하는 일론 머스크 (c) National Geographic Korea

 2018년, 일론 머스크가 대표로 있는 민간 우주 개발 업체 스페이스 X는 펠컨 헤비 로켓을 발사했다. 화성 정착이라는 꿈의 첫 발걸음이었다. 또한 발사된 보조 로켓이 다시 땅에 착륙하는 최초의 기술이 시도되는 순간이었다. 팰컨 로켓이 발사된 지 8분 후, 연필같이 길고 얇은 보조로켓이 되감기 하듯 하늘에서 내려왔다. 거대한 불꽃을 뿜으며 안정적으로 땅에 착지했다. 그 순간 앨론 머스크는 개구리가 되었다. 팔딱팔딱 발사대 근처를 뛰며 소리쳤다. "됐어! 이게 됐다고! 믿어져?!". 나는 그때 앨론 머스크에게 반했다. 

 순수한 열정이 머리 끝에 닿은 사람. 권력과 경영과 물욕 사이에서도 로켓 따위를 띄우겠다는 열망을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언제나 감동이다. 그러니 핸들이 필요 없는 자율 주행 자동차쯤이야 금세 개발될 것이다. 


 나는 벌써 부산으로 향하는 자율 주행 자동차 안에서 쓸 글을 고민 중이다. 물론 처음으로 쓸 글의 제목은 "일론 머스크에게 바치는 편지'다. 차에는 핸들 대신 노트북 거치대가 있을 것이다. 운전에 쓰이던 지루한 시간도 다른 열망이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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