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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Sep 26. 2016

칙릿 소설의 진화, 그리고 르네 젤위거

Movie Appetizer#23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
워킹 타이틀의 따뜻한 공식
칙릿 소설의 진화, 그리고 르네 젤위거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가 돌아왔다.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온 제작사이지만, ‘리처드 커티스’가 은퇴한 이후, 예전의 감성을 가진 로맨틱 코미디는 그들의 라인업에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리처드 커티스에 대해 조금 언급하자면, 그는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었다.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에서 각본을 맡았고,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워킹 타이틀의 작품엔 늘 그가 있던 셈이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워킹 타이틀의 인기녀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최신작이며, 리처드 커티스 이후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과거 흥행한 시리즈의 재탕일지, 혹은 꼭 해야만 했던 말이 있어서 돌아온 것인지 궁금할 텐데, 로맨틱 코미디의 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후속편으로 꼽아도 좋을 것 같다. 더불어, “Manner makes man”을 외치던 신사 콜린 퍼스를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낭만적인 영화였다.



워킹 타이틀의 따뜻한 공식들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는 공통적 가지고 있는 특징이 몇 개 있다. 가족 구성원 혹은 함께 사는 사람이 신체·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약자이거나, 친구·주변인 중에 게이 등의 소수자가 있다. 이들은 서로가 가진 상처를 드러내고 아파할 때도 있지만, 영화는 이들을 특별한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들을 다른 이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바라보고, 편견의 대상으로 한정 짓지 않게 한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도 그들에게 거리감을 두지 않는다. 이렇게 워킹 타이틀은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악인이 드물다는 거도 이 제작사표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이다. 주인공에게 비호감을 가진 인물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주인공이 추구하는 사랑과 행복이라는 목표를 방해하거나, 나쁜 음모를 꾸미는 지독한 악인은 없다. 조금 삐뚤어진 것 같은 캐릭터는 그저 다양한 인간 군상 중의 하나이며, 주인공의 성격과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촉매라고 불 수 있다. 무찔러야 할 악인이 없으니 영화는 자극이 적으며, 관객은 주인공의 내면과 갈등에 더 집중하고 공감할 수 있다.


워킹 타이틀이 추구하는 따뜻한 시선과 인물에 섬세하게 맞춰둔 ‘로맨틱 코미디’라는 톤 앤드 매너가 더해지면, 다른 영화에서는 불편할 수 있는 농담도 유머 그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40대 미혼모가 될지 모르는 브리짓 존스가 주인공이다. 험난한 일을 겪을 것 같은 (예비)미혼모를 영화가 따뜻하게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제작사에 대한 애정을 더 가질 수밖에 없었다.



칙릿 소설그 이후의 이야기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헬렌 필딩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이 작가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서 각본을 맡았다. 리처드 커티스의 빈자리를 채워준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칙릿 소설’이라는 장르로 불린다. 칙릿 소설: 20∼30대 미혼 여성의 일과 사랑을 주제로 하는 소설. 브리짓 존스의 첫 이야기는 이 장르를 대표할 만한 이야기로 불렸고, 많은 공감을 얻어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이라는 후속편도 제작될 수 있었다. (이번에 개봉하는 신작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겠지만, 잔재미를 찾기 위해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칙릿 소설에 등장한 주인공의 10년 뒤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흥미롭다. 영화 속 존스와 다시(콜린 퍼스)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던 관객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40대 여성의 삶에 대해 말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드물기에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도 기대할 수 있다. 영화는 40대 골드 미스가 뜻밖에 맞이한 임신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풀어나가는데, 결국 말하고 싶었던 건 사랑에 관한 것이다. 40대는 여전히 사랑하기에, 그리고 사랑받기에 좋은 나이다. 그리고 다양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시기다. 브리짓 존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40대의 르네 젤위거

얼마 전, ‘르네 젤위거 성형 의혹’이라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었다. 글을 쓴 기자는 대중이 기억하는 32세의 사랑스러운 브리짓 존스와 너무도 달라진 르네 젤위거의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뒤에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출연했던 휴 그랜트가 TV 쇼에서 그녀의 현재 모습을 몰라본, 웃지 못할 사고도 있었다. 지나간 세월과 늘어난 주름의 흔적 앞에 르네 젤위거의 40대는 잔인한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르네 젤위거는 보란 듯이 아주 멋지게 돌아왔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그녀가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동화처럼 박제되지 못한 칙릿 소설·영화 주인공의 현재이자 현실을 제대로 조명하는 영화다. 르네 젤위거는 10년이란 시간 앞에 숨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40대에도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임을 증명한다. 미혼모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다룬 것만큼, 40대 르네 젤위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도 아름답게 보여준 것은 정말 놀라운 연출이라 할 만하다.


브리짓 존스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난 걸까. 세월이 흐름에도 브리짓 존스에게 할 말이 있는 한, 그리고 여전히 브리짓 존스가 사랑하고 받을 존재인 한, 이 시리즈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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