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과 미장센으로 영화 읽기#002
<아메리칸 뷰티>는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누구의 시점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영화 속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보면, 그리 빠른 전개의 영화가 아님에도 속도를 따라잡기가 벅찼죠. 영화가 끝나고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잔상은 강렬한 붉은 색입니다. 환상 속에 등장했던 장미가 그랬고, 주인공의 집 대문도 붉은색이었죠. 끝으로 주인공의 생이 끝나는 순간에도 붉은색이 화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이 붉은색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욕망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 영화는 방향이 어긋난 욕망이 얽혀 파멸을 불러오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특히 레스터 번햄(케빈 스페이시)가 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를 응시하는 많은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카메라는 레스터 번햄의 욕망(향해선 안 되는 곳을 바라보라 부추기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재미있게도 딸 제인(도라 버치)은 안젤라를 향한 아버지의 끈적끈적한 욕망을 느끼지만, 그의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은 옆에서도 그 시선의 정체를 모릅니다. 이는 안젤라를 향한 제인의 질투를 보여주며(혹은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동시에 아내의 욕망이 향하는 곳이 남편이 아님을 알게 하죠.
그 밖에 <아메리칸 뷰티>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레스터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장미 꽃잎입니다. 특히, 딸의 친구를 상상하는 장면 속, 그를 향해서 꽃잎이 떨어지지는 부분은 많은 광고, 영상 등에서 패러디할 정도로 매혹적이었죠. ( SNL 코리아에서도 이 장면을 차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해석할 때에는 꽃잎의 운동 방향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레스터와 안젤라를 극부감으로 찍은 두 장면에서 장미 꽃잎이 향하는 방향은 서로 다릅니다. 레스터의 장면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안젤라의 장면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꽃잎은 운동하고 있죠. 이 세계를 지배하는 중력이라는 운동원리를 적용한다면, 꽃잎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야 합니다. 이 원리를 대입해 장면을 다시 본다면 레스터에게 떨어지는 꽃잎은 안젤라에게서 떨어지는 것이겠죠. 그리고 극부감으로 찍힌 것 같았던 안젤라의 장면은 사실 극앙각이 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안젤라가 레스터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위와 아래라는 이 위치의 상대성을 주도권으로 본다면, 레스터가 안젤라에게 끌려다니는 존재로 볼 수 있죠. 영화의 후반부에 안젤라는 누워있고, 레스터는 그녀 위에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관계 직전인 이 장면 속 인물의 위치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레스터가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단편적인 생각과 색채의 인상에 대해 글을 썼지만, 정확히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좀 더 깊게 생각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아메리칸 뷰티’라는 제목을 생각했을 때, 아메리카의 가정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관계, 내재한 어긋난 욕망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라 어렴풋이 예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끼워 맞추기식 추측이기에, 더는 글을 전개하기엔 무리라 생각하며 짧은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