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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08. 2017

봄날 쉬어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영화

Appetizer#72 어느날


올 초 화제작이었던 <싱글라이더>는 이병헌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는 묵직한 무드가 인상적이었던 영화다.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기가 만든 탄탄한 역시 호평을 받았었다. 하지만 35만 명의 관객을 동원, 흥행 면에서 분명 아쉬움을 남겼다. <싱글라이더>는 극장가의 트랜드와 꽤 큰 간격이 있었고, 덕분에 이 시대의 관객이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영화가 주는 ‘자극’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영상 테크놀로지의 발달 이후 관객은 영화관에서 무언가를 체험하고 느끼기를 원한다. 다양한 영상 기법과 효과가 버무려진 장르 영화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자극을 관객에게 주려고 한다. 화려한 액션,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온몸이 들썩이는 사운드 등 어떻게든 자극을 주려 한다. 한국 영화에 ‘신파’가 하나의 흥행 코드가 된 것도 유사한 이유일 것이다. 한국이 가진 자본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액션을 만들기엔 무리가 있기에, 신파는 관객에게 감정적 자극을 주기에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 방법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도 묵묵히 자신의 색깔을 밀고 나가는 영화가 찾아왔다. 이윤기 감독의 <어느날>은 자극의 홍수 속에서도 ‘담백함’을 내세운 영화다. 영화의 산뜻한 느낌은 이 계절 ‘봄’과 닮아 따뜻했다. 그리고 영화 자체의 태도도 무엇인가를 강요하려 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며 인물의 감정에 물들게 한다. 카메라가 만드는 화면 역시 과하게 무언가를 전시하려 하지 않았다. 흡사 <싱글라이더>의 영화적 태도와 비슷해 보이지만, <어느날>은 그보다 발랄하고 사람을 미소 짓게 해, 메마른 감정을 더 촉촉이 적셔줄 수 있는 영화다.


<싱글라이더>의 이병헌이 그랬듯, <어느날>의 매력도 결국엔 배우의 연기에 많이 기댄다. 김남길과 천우희와 호흡을 맞춰 영화를 끌고 나간다. 여전히 김남길의 연기가 좋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천우희에게 찍혀있다. 주로 우울한 역을 맡았던 그녀가 (역시나 비극적 상황을 마주한 건 유사하지만) 보여주는 밝음과 긍정의 기운은 이 영화 최고의 매력이며, 관객이 보고 싶었던 천우희의 얼굴이다. 천우희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반드시 관람해야 할 영화 목록에 넣어야 할 것이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날>은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본래 가졌던 ‘담백함’에 조미료를 친다. 감정과 서사의 잉여로 보이는 부분이 점차 많아진다는 것이다. 애초에 장르 영화적 자극을 줄였던 <어느날>의 갑작스러운 변화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는 이윤기 감독이 다루고자 한 ‘어떤 문제’에 관한 태도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날>은 ‘민감한 문제’에 관해, 꽤 뚜렷한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 영화다. 이 관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영화의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떠나 영화의 시선이 무척 따뜻했기에 설득당할만하고, 거부감은 크게 없을 것이다. 화면 전체에 깔린 ‘따뜻함’이라는 정서에 반하게 되는 영화, <어느날>. 봄날, 세상의 무수히 많은 자극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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