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etizer#71 보통사람
보통: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사람: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이상 네이버 국어 사전)
앞의 내용을 보면, 보통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사람>은 여기에 ‘상식’과 ‘생존’ 등의 조건을 추가한다. 그리고 보통사람을 정의하는 건 꽤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있다. 과거 윤리 시간에 저 문장에 등장하는 사람이라는 단어의 뜻이 모두 다름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보통 사람>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몇 번째 사람과 뜻이 통할까.
따분한 말장난으로 글을 시작했다. <보통사람>엔 저마다 ‘보통’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상식을 알아야 한다는 추기자(김상호), 힘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규남(장혁), 그리고 먹고 살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성진(손현주). 그들에겐 저마다의 가치가 있고, 그 기준을 ‘보통’으로 생각하며 행동을 한다.
세 속성 모두 장단이 있기에, 어떤 선택이든 당위성이 있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부와 권력 간의 관계, 그리고 권력과 윤리성의 관계는 영화 속에서 반비례한다. <보통사람>이 보여주는 도덕, 윤리적 선택의 대가와 그 가치를 무시한 선택의 대가는 극명히 나뉘고, 각각의 인물들이 삶을 유지하는 형태 또한 달라진다. 어떤 행동이 ‘옳은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지만, 어떤 행동이 ‘살만한’ 선택인지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 문자로 읽을 때 이 문제의 답은 너무도 명확하고 쉬워 보인다. 하지만 <보통사람>처럼 자기 일이 되어 목을 조를 때, 끝까지 소크라테스가 되고자 할 수 있을까. 현 시대의 관객이 80년대의 폭력성 앞에 놓이지 않아도 되는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대신, 이 시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잊혀진 소크라테스를 기억하고, 돼지가 된 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일이 아닐까.
노골적이 설정이 작위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보통사람>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걷고, 뛸 수 있는 다리를 얻었던 과정을 인간의 다층적인 ‘딜레마’를 통해 보여주려고 시도한 영화다. 지금 다리를 가진 대한‘민국’이 아는 희생만큼 숭고한 일이 있었고, 모르고 있던 악습만큼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영화다. 소크라테스를 저버린 돼지들, 그리고 그 돼지의 속성을 시대가 지났음에도 버리지 못한 이들에게 <보통사람>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