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11. 2017

폐쇄적 공간과 미지의 존재가 주는 공포

Appetizer#73 라이프


우주 생명체와의 만남을 다룬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그리고 우주에서의 재난을 다룬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이 두 영화를 모두 연상하게 하는 영화가 개봉했다고 한다. 그 주인공은 <라이프>인데, 인류 최초로 화성에서 발견한 생명체와의 만남과 그로 인한 재앙을 다룬 영화다.


하나씩 살펴보면 <라이프>는 우주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덕분에 앞의 두 영화와 ‘당연한’ 공통항을 가진다. 그 옛날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그랬듯, 우주 영화는 지구와는 다른 과학적 현상을 스크린에 보여주며, 리얼리티와 재미를 모두 획득한다. ‘무중력’의 표현이 대표적인데, 떠다니는 물방울과 중력에서 자유로운 사람과 물건은 우주 영화에 꼭 필요한 이미지다. <라이프> 역시 그런 이미지를 표현한다. 특히, 우주에서 액체가 줄 수 있는 공포를 표현한 부분이 흥미로우며, 새로운 공포를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라이프>가 집중하려 했던 건 방대한 우주와 그 법칙이 아닌, 우주선이라는 갇힌 공간이다. <라이프>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다른 우주 영화들과 비교해 그 공간 자체엔 관심이 없다. 다른 영화들이 보여준 수준 그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주선이라는 밀실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극한의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우주라는 공간을 택한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라이프>의 공간이 바다 밑이었다면, 영화의 주제는 유지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 대신, <라이프>는 고립과 단절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공포의 자극제로 활용했다. <라이프>는 다양한 형태의 ‘단절’을 시작으로 우주선이라는 공간이 주는 폐소공포증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미지의 존재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이 만나 시너지를 낸다,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 이런 ‘호러’라는 소재와 정서가 많은 이들에게 <에일리언>을 환기하게 했을 것이다.



우주에서 만난 재앙 앞에서 도망치고, 달아난다는 <라이프>의 전개는 <그래비티>에서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가 지구로 귀환하는 이야기와 닮았다. 두 영화는 인간이 우주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비상구를 향해 움직인다는 데서 서로 닮은 데가 있다. <그래비티>의 스톤 박사가 만났던 다양한 장애물이 우주가 던져준 ‘재난’이었다면, <라이프>는 인간의 호기심이 만든 생명체와 그가 만든 ‘재앙’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소재가 더 자극적이고, 끔찍하다는 점에서 <라이프>가 상업적으로 더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캘빈이라는 생명체로는 <그래비티>의 엄청난 몰입감을 따라가지 못할 듯하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 <라이프>는 <에일리언>과 <그래비티>를 생각나게 한다.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영화는 <에일리언>의 소재와 장르, 그리고 <그래비티>의 무력한 인간의 이야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영화관에서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나쁘지 않고 무난하다. 하지만, 앞의 두 영화가 제각각 성취했던 것들을 단 하나도 제대로 이루지는 못한다. 향을 닮을 수 있으나, 그 맛을 우려내지 못한 느낌. 그래도 두 영화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면, 절대 나쁘지 않으니 영화관에서 보기를 권하고 싶은 영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날 쉬어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