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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23. 2017

스스로 취한 영화를 위한 변명

Appetizer#78 콜로설


글에 자주 언급하는 감독 중 ‘조르주 멜리에스’라는 감독이 있다. 영화의 초창기 다큐멘터리적인 영상에서 벗어나 필름에 상상력을 이식한 위대한 감독이다. 그로 인해, 영화는 현실을 담는 것을 넘어, 꿈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영화란 현실을 옮겨오기도 하지만,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다.


최근 한국의 영화에서 이런 참신함을 보기 힘들어졌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 <가려진 시간>이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 했던 것 같지만, 그 결과도 그리 만족스럽진 못했다. 그 외에는 익숙한 이야기를 보는 듯한 ‘기시감’ 속에 수없이 많은 관람을 해왔다. 이건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 혹은 ‘재미가 없다’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상상력을 폭넓게 활용한 영화가 그립다는 것이다.



이런 불감증을 느끼던 중, 한국을 배경으로 한 색다른 영화와 만났다. <콜로설>은 서울 한강에 갑작스레 나타난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로, B급 감성이 잔뜩 묻어 있는 영화다. 서울과 괴물, 그리고 한강이라는 소재가 섞일 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오버랩될 법도 하지만, 이 영화는 완전히 색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별다른 정보 없이 관람한다면, 아마도 첫 장면부터 낯선(?) 혹은, 친밀한(?) 장면 덕에 놀라게 될 것이다.


<콜로설>이 준비한 독특한 설정의 참신함, 그리고 재기발랄함은 경쾌하며 즐겁다. 갑작스러운 외계의 생명체가 던지는 의문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몰입을 유도하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오랜만에 앤 해서웨이의 무장해제 된 모습과 만날 기회도 있다. 그녀의 최근 영화(<인턴>, <인터스텔라>, <레미제라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에서 볼 수 없던 망가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마저도 새롭다. 이런 의외성이 <콜로설>이 가진 무기다.



그런데 영화의 신선함에 익숙해지면, 페인트칠이 벗겨지듯 많은 결점이 드러나고, 영화가 중심을 못 잡는다는 한계를 노출한다. 외계생명체의 등장이라는 유사한 소재의 <컨택트>가 자신만의 화법으로 관객을 끝까지 집중시킨 것과 달리, <콜로설>은 자신의 화법을 잃고, 이야기가 방황한다. 영화의 갈등이 점점 커지기보단 줄어들고, 인물의 드라마도 파편적으로 제시되어 잘 붙지 않는다. 깊게 파고들면 뭔가 의미가 있을 것도 같지만, 영화의 공백이 상당하다는 것(혹은 너무 추상적인 시도였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다. 글로리아(앤 해서웨이)가 자주 취해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영화 자신도 취해버린다.


그래도 오랜만에 ‘새롭다’는 느낌을 준 영화를 위해, 조금 더 글을 써두고 싶다. <콜로설>의 공백을 채우고,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대입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이다. 파괴된 서울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그런 서울을 미디어를 통해 바라본다는 것, 글로리아의 숙취 등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콜로설>은 정치‧사회적인 의미와 함께, 꿈을 표현하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말하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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