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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Dec 29. 2017

[1987] 알면 재미난 10가지 잡지식

양기자의 씨네픽업 - 1987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6월 항쟁'까지 이어지는 그 모든 순간을 담은 가슴 뛰는 이야기, 영화 '1987'이 개봉했습니다. 장준환 감독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 '1987'의 10가지 잡지식을 살펴봅니다. 역사가 스포일러이지만, 그래도 작품 속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먼저,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용어 몇 가지를 살펴볼까요? '호헌철폐'는 당시의 헌법을 지키는 것(호헌)을 중단하고 헌법을 개정하라는 뜻입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의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접선거가 아닌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였습니다. 국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군부정권이 계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이에 반발하여 민주화 세력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은 직접선거제도를 포함한 개헌을 요구했으나, 전두환 정부는 1987년 4월 13일에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선언했습니다. 이른바 4.13 호헌조치로, 이 조치를 거두라는 것이 바로 '호헌철폐'입니다.



2. 다음은 '보도지침'입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거의 매일 내렸던 기사 작성에 관한 가이드라인이죠. 1987년 9월, 해직된 언론인들이 만든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폭로함으로써 처음 알려졌는데요. 2016년, 오세혁 작가의 연극 '보도지침'이 공연된 바 있습니다. 일간지 사회부장(고창석)이 사건의 취재를 지시하며 칠판에서 지우는 내용이 바로 '보도지침'입니다.


3. 장준환 감독과 김윤석 배우 등 제작진은 '1987'을 준비하면서, 부산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행사에 참석해 유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유가족들은 영화의 제작에 대해 흔쾌히 허락한 것은 물론, 故 박종철 열사의 유품인 안경을 빌려주었고 실제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은 이 실제 안경을 모델로 똑같이 제작됐습니다.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유가족들의 진심 어린 응원에 감동했고, '1987'을 위해 마음가짐을 다잡게 되는 계기가 됐죠.



4.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수감 중인 민주화 운동 인사와 도피 중인 재야인사 사이에서 비밀 서신을 배달하죠. 검문에 걸리면 국가보안법 사범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진실이 담긴 잡지를 퇴근길에 챙겨 나르는데요. 이때, 교도소 밖으로 들키지 않고 진실을 전하는 방편으로 등장하는 잡지가 'TV가이드'입니다.


'TV가이드'는 당시 주간방송편성표 및 방송 프로그램 소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잡지였죠. 보통 영화에서 소품으로 사용하는 잡지는 단순히 출력해서 사용하지만, '1987' 속 잡지는 1987년 당시에 사용했던 종이의 무게와 재질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특히, 수감 중인 민주화 운동 인사 '이부영'(김의성)이 교도소에서 '한병용'에게 넘겼던 'TV가이드'는 실존 인물이 쓴 편지를 토대로 똑같이 재현했습니다.


5. '1987'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류들을 제작할 때는 현재의 타자기가 아니라, 1980년대에 만들어진 구형 타자기로 직접 활자를 쳤는데요. 대공수사처, 서울지검 등 당시 기관 및 부서마다 사용하는 서체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서체별로 실제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완성해나갔습니다.



6. 당시 경찰 총수인 '치안본부장'을 맡은 우현 배우는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 집행부 출신으로, 故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은 물론 49재 행사를 이끌었습니다. 우현 배우는 "1987년에 가장 치열한 대학 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정권의 실세인 '안기부장'을 맡은 문성근 역시 1987년 그 현장을 직접 겪은 배우입니다. 일간지 사회부장을 연기한 오달수는 박종철 열사의 모교인 혜광고 후배라고 밝히면서, 장준환 감독에게 잠깐이라도 출연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처장' 역의 김윤석 배우 역시 박종철 열사의 고등학교 2년 후배였죠. 김윤석 배우의 대사 중에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가 있었는데요. 김윤석은 막상 그 대사를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즉흥적으로 추임새인 "어?"를 넣었다고 합니다. 김윤석은 1987년 당시 기사를 읽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나 싶었는데, 30년이 지나 내가 이 대사를 할 줄 몰랐다"라고 고백했습니다.



7. 제작진은 1987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45,000평 부지에 오픈 세트를 지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정문부터 시청 광장, 명동 거리, 유네스코 빌딩, 코리아 극장 등을 되살려 냈고, 건축 자재 하나까지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소재들도 해외 루트를 통해 수급하는 등 최대한 리얼리티를 보존하기 위해 고심했죠.


8. 그중 가장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곳은 바로 명동성당이죠. 실제 각종 집회와 민주화를 촉진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던 명동성당 내부에서의 촬영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허가됐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됐습니다. 1987년 당시 명동성당 앞에는 시민들이 시위를 독려하기 위해 용돈과 음식을 대학생들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장준환 감독은 명동성당을 지켰던 김수환 추기경도 영화에 집어넣어야 했으나, 넣지 못해 아쉬웠다고 밝혔습니다.



9. 1987년 당시 대표적인 민중가요였던 '그날이 오면'은 '1987'의 메인 테마곡이자, 엔딩을 장식하는 중요한 음악으로 사용됩니다. 이번 작품엔 이한열 합창단이 직접 녹음에 참여했는데요. 이한열 합창단은 연세대학교 87학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화의 힘을 보태기 위해 직접 녹음에 참여했습니다. 한편, 극중 강동원 배우가 연기한 이한열 열사가 속한 '만화사랑' 동아리는 진짜 대학교 재학 중에 다닌 동아리라고 합니다. 물론,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연희'는 영화 속 몇 없는 가상 인물입니다.


10. 엔딩을 장식하는 대규모 시위 장면에는 배우부터 보조 출연진까지, 모두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되어 열연을 펼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함성이 모여 시위 장면을 완성했고, 그 함성의 중심에는 장준환 감독의 아내인 배우 문소리의 목소리가 깜짝 등장합니다. 문소리는 시위 장면을 촬영할 당시, 선두에 서서 가장 큰 목소리로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고, 보조 출연진들에게 적극적으로 연기 지도를 했죠. 문소리는 직접 스크럼블 대형 등을 지도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장준환 감독은 "역시 운동권 출신은 가르치는 게 다르다. 나보다 더 도움이 됐다"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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