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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r 14. 2018

[지금 만나러 갑니다] 쉼표 하나의 엄청난 차이

Appetizer#119 지금 만나러 갑니다

하나, 원작을 최근에 관람했다
둘, 원작을 잊기 힘든 상황에서 관람했다
셋, 원작의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면 관람하지 않는 게 낫다     


너무도 큰 <지금,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아우라

그래, 또 원작 타령

“또, 원작 타령이야?”라고 묻는다면, 이번 글에선 “네, 맞아요”라고 대답해야겠다. 리메이크 작품에 관한 글을 쓸 때, 원작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최근에 볼일이 있었고, 그 이미지의 잔상이 진하게 남아있는 상태에서 한국판을 관람해야 했다. 덕분에 이 글은 거의 모든 대사와 장면에서 원작을 소환할 수밖에 없던 관객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후기가 되었다. 원작 언급 지겨운 분들은 읽지 않을 것을 권한다. 


“원작 타령을 할 거면, 리메이크를 왜 봤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설정과 스토리 그리고 공간까지 원작의 그것을 복제하려 시도한 작품이다. 예고편만 봐도 원작의 이미지를 충실히 가져오려고 한 의도가 보인다. 이런 작품이 원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한국판에서 유독 눈에 띈 게 하나 있다면, 제목의 ‘지금’ 옆에 쉼표가 사라졌다는 거다. 그리고 딱, 이 쉼표만큼의 차이가 일본판과 한국판의 차이다.



플러스. 손예진과 소지섭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원작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배우다. 그 무엇보다 손예진의 멜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영화다. 거기에 그녀 옆의 남자가 ‘소간지’, 소지섭이다. 두 사람이 만드는 이미지는 기대만큼이나 아름답고 멋지며, 겨우내 잠들었던 연애 세포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에서 무분별한 ‘클로즈업’의 사용은 분명 아쉬운 부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손예진과 소지섭의 클로즈업 된 얼굴이 만드는 감동이 가장 강렬하기도 했다.)


플러스. 미술 및 공간의 구현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또 다른 매력은 원작의 독특한 공간을 잘 구현했다는 데 있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공간의 차이, 그리고 거의 15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원작의 느낌이 잘 살아있다. 원작과 유사한 공간을 찾기 위해 로케이션 담당자들이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공간과 함께, 다양한 소품과 소도구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특히 수아(손예진)의 추억이 담긴 공간의 미장센이 인상적이다.



마이너스. 그 외 모든 것

앞의 요소(배우와 공간 및 미장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요소가 아쉽다. 음악, 카메라의 구도, 편집, 연출 등 대부분의 요소가 원작과 비교하기 민망할 수준이다. 굳이, 원작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완성도가 높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우선, 한국 영화가 강박적으로 가지고 있는 ‘코믹’ 코드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만의 분위기를 완전히 깨버린다. 고창석, 이준혁이 보여주는 코미디는 단발적인 웃음을 만들어 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을 전달하기에는 걸림돌이 된다. 원작에선 관객을 자연스레 미소 짓게 하는 장면이 많았다면, 한국판에서 웃으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돋보인다. 혹은, 영화의 본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옆길로 새는 느낌이다.



카메라의 구도 및 컷의 편집도 영화의 ‘멜로’를 살리는 데 아무런 역할을 못 한다. 원작은 두 사람의 간격,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 그리고 장면의 구성을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유튜버 ‘팝콘트리’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영화는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 편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비교해 한국판은 클로즈업의 나열로 감정의 변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짧은 컷들의 나열로 감정의 이입마저도 방해한다. 좋게 말하면, 소지섭과 손예진의 얼굴을 담는데 충실한 영화고, 나쁘게 말하면, 손에진과 소지섭의 얼굴에만 기댄 영화다.


하나 더 언급하자면, 음악의 활용도 별로다. 일본판 OST "시간을 넘어서“ 같은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없다. 오히려 한국판은 음악이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를 깨버린다. 이런 음악의 활용만 봐도, 한국판에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감정과 톤 앤 매너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 영화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방향을 잘 잡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쉼표 하나의 엄청난 차이

원작이 정통 멜로로서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을 전달하고자 했다면, 한국판은 거기에 코미디적 요소와 발랄함을 섞어 모호한 영화를 만들고 말았다. 글의 서두에서 말했듯 쉼표 하나의 차이, 즉 영화가 가진 여유의 차이가 크게 다가온다. 일본판은 서서히 감정을 물들였다면, 한국판은 급하게 감정에 이입하라 한다. 원작보다 무려 13분이 늘어났지만, 이 늘어난 시간을 감정을 쌓는 데 쓰지 않고, 옆길로 빠지며 볼거리를 전시하는 데 사용했다.


흥미로운 건,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매력적으로 보인 몇몇 순간은 원작에 없던 부분이라는 데 있다. 이런 장면에선 영화가 원작의 부담에서 벗어난 듯했고, 손예진과 소지섭 역시 그들의 매력이 자연스럽게 잘 드러난다. 결국, 이번 리메이크는 완전한 모방, 혹은 색다른 시도 중에 하나의 방향을 명확히 해야 했다. 이번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특정 장면의 복제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고, 한국식 코드에 집착하며 이야기의 완성도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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