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진 순간’을 적셔준 영화
“불이 꺼진 영화관, 그 암실 속에서만 나는 자유로웠고, 평화로울 수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영화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이런 근사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온갖 모양의 ‘실패’라는 파도, 그리고 약풍부터 태풍까지 다양한 세기의 바람을 맞으며 지나온 20대, 그때 영화관은 내게 하나뿐인 도피처였다. 언제 찾아가도 날 위해 자리를 내어준 그런 곳이었다.
부스러진 시간을 뒤로하고
이글을 쓰는 이유
다행히 거기, 영화가 있었다
20대엔 왜 그리도 도망갈 일이 많았던 걸까. 그땐 반복되는 현실에서 느낀 갑갑함, 그리고 실패로 쌓인 시간 속에 느낀 무력감으로 지쳐있었다. 그런 감정들이 망가뜨린 일상과 썩어 문드러진 인생을 치유해줄 곳이 필요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리고 혼자서도 우주의 역사에 남을 일을 해낼 것만 같던 20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비슷한 나이의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역사를 썼을 때, 난 입대를 앞두고 별거 없는 내 인생의 역사를 일기장에 쓰며 궁상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부스러지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깨어져 잘게 조각이 나다”라고 한다. 감히, 이 표현을 내 20대를 대표할 수식어로 붙여주고자 한다. 온갖 것들이 나의 뜨거웠을 뻔한 시간을 깼고, 내 인생의 아름답던 계획들을 무참히 빻았다. 언젠가 꿈꿨던 것들은 이제 가루가 되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
뭐라도 해내야만 값져 보이는 시기, 누군가에겐 청춘의 온도가 뜨겁던 순간, 20대. 난 속만 끓으며 그 순간의 온도를 높였다. 언젠가부터 나보다 앞서가는 시간 앞에 초조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을 펼쳐놓고서 답 안 나오는 계산을 했다. 답이 없더라도 선택은 해야 했다. 객관식 문제를 풀다 답이 헷갈릴 때 그랬듯, 뭐라도 찍어야 했다. 그게 비록 오답일지라도 내일 던질 패를 준비해야 했다. 그때 배운 인생은 그런 거였고, 그렇게 하루를, 일 년을, 십 년을 버텨야 했다.
‘인생’이란 걸 도박에 비유하는 게 부적절할 수 있으나, 인생은 도박보다 까다롭다. 인생은 확률이란 걸 무의미하게 한다. ‘내가 어떤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란 물음은 자신 혹은, 타인의 평가를 통해 윤곽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배팅을 쉽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해낼 가능성이 높은 일이 반드시 미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다. 아니, 그보다 더 빌어먹을 문제는 간혹, 내가 가진 패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배팅을 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에 있다.
그래도 어쨌든, 아무튼 ‘제시간에’ 배팅해야 한다. 20대의 끝자락에 깨달은 건, 계산할 수 없는 패들 사이에서 고민만 하다 시간을 버리느니, 일단 뭐라도 과감히 배팅하라는 것이다. 그 순간 가장 아까운 건 '실패라는 결과보다는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닐까'라는 개똥철학을 처절히 익혔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써볼까 말까 고민한 영화에 관한 글을 더 늦기 전에 시도하고 있다.
이런 글은 독자를 생각하고 쓰는 글이지만, 내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읽어도 될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글은 내 인생처럼 예측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글은 ‘나’를 위해 쓰는 글이다. 내가 하루라도 어렸던 순간의 생각을 기록하고, 미래의 심심한 어느 날 꺼내 보기 위해 쓰는 글이다. 며칠에 걸쳐 쓴, 10년 치의 일기라고나 할까. 세상이 나를 기억해줄 리 없기에 나라도 내 모습을 기억하고자 하는 발악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또 하나, 이 글을 쓰는 건, 오만가지 불안함이 나를 덮치기 위해 매복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버티기 위함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극도로 사치스러운 이유에서 이 글을 쓴다고 밝힌다. ‘있어 보이기 위해’ 글을 쓴다. 지적인 사고를 하는 것만 같은 내 모습, 이것으로라도 부스러진 내 인생에 허세를 부려보고자 하는 유치한 마음. 부끄럽지만 이 유치함이 글쓰기의 꽤 강렬한 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계란 한판’이란 나이를 앞두고 제대로 이룬 게 없었다. 어릴 적 일기장에 쓴 '위인 같던 어른의 나'는 등장한 적도 없는데 퇴장해버렸다. 무기력이 늘어가는 이 시기, 뭔가를 하고 있었다고 나를 위로하고, 또 누군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열심히는 살고 있네요’라고 위로를 받고자 이 글을 시작한다.
자조적 이야기, 자괴적 무드가 도를 넘었다. (이 글의 장르는 에세이도 비평도 아닌, ‘자기파괴의 글쓰기’라는 장르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자기파괴적인 글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이들은 ‘이런 사람도 잘 버티고 살고 있구나. 심지어 글도 쓰는구나’라며, 역으로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게라도 이 글이 타인을 힐링해줄 수 있다면, 이 글쓰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일이 될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여러분! 자조로 시작한 이 글은 희망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자기 반성문 같던 앞의 글과는 달리, 놀랍게도 『다행히 거기, 영화가 있었다』는 영화에 관한 (나름의)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룬 글이다. 여기엔 20대에 봤던 영화 중 이런저런 의미가 되어준 영화를 모았다. 수많은 영화 중, 내 ‘부스러진 인생’을 적셔준 영화들이다. 내가 방황할 때, 다행히 거기 있었던 영화들이다. 지금부터 그 고마운 영화들에 관한 개인적인 감상과 비평 비슷한 것을 시도한 흔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앞으로 쓸 글들은 영상문화를 잠깐 공부했던 시기에 익힌 한정적인 지식만으로 시도한 비평이다. 덕분에 부족한 면이 많을 것이다. (인정한다) 그래도 이 책의 의도인, ‘20대의 설익은 사유’를 기록하기엔 적절해 보인다. 내 글의 부족함을 알기에, 나 자신을 ‘아닐 비’를 쓴 비(非)평가라 부르고는 한다. 혹은, 나를 가엾이 여겨 ‘슬플 비’를 쓴 비(悲)평가라 부르기도 한다. (30대에도 여전히 영화가 좋다면 진짜 비(批)평가에 도전해볼 수 있지 않으려나)
이번 글은 ‘글쓴이의 말’ 정도로 첫 부분에 들어갈 것이다. 다른 위대한 작가들이 이 부분을 언제 쓰는지 모르겠으나, 『다행히 거기, 영화가 있었다』에서는 정말로 본격적인 글쓰기를 앞두고 ‘글쓴이의 말’을 쓴다. 부디, 앞으로 쓸 글들이 모여, 하나로 잘 완성되기를. 이 글쓰기가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며, 목차부터 차례차례 적어나간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이제 반만 더 쓰면….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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