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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an 11. 2019

[언니] 혼이 실린 주먹과 혼이 없던 찌질이들

영화 일기#072 언니

'시네마 바'의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새해 시작부터 극장가는 빨갛다. <언니>는 이시영이 입었던 옷처럼, 영화를 향한 평가도 빨간 불이 켜졌다. 키노라이츠 평점(15.3%, 1.46점)과 다양한 후기만 봐도, <언니>를 다 본 것만 같다. 이 영화를 향해, 누군가는 마동석 유니버스와 비교하는 따끔한 의견을 던졌고, 누군가는 유일하게 빛났던 이시영을 향해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알 듯, 키노라이츠 지수 0%를 면할 수 있던 건 온전히 그녀 덕이다. 홀로 견뎌낸 이시영을 위해 몇 가지 변명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변명도 결국엔 하나의 문제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체 무엇이 이 영화를 이따위로 추락하게 한 걸까.



<언니>는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한 여성의 대리인이 악인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선'은 여성으로, 사회의 '악'은 남성으로 구분해 남녀의 대립 구도를 설정한다. 범죄에 가담하는 여성도 있지만, 이들을 향한 응징의 수위는 낮고, '남성'을 향한 처벌이 훨씬 참혹함을 볼 때, 감독의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빨간 원피스와 하이힐로 과하다 싶을 만큼 주인공의 여성성을 부각하기도 했다. 이처럼 <언니>는 타락한 성욕에서 동생을 구원하는 여전사의 이야기이며, 이때 구원은 남성의 처벌(거세로도 볼만하다)로 이뤄진다.


이 글에서는 <언니>가 보여준 이야기의 완성도를 따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못난 영화들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개연성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언급할 정도는 아니라 본다. 스토리가 뛰어나지않지만, 액션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에서 비난을 받을 정도는 아니며, 이를 보안할 기회도 있었다. 즉, 액션의 쾌감과 볼거리가 빈약한 서사채울 희망은 있던 영화다.



그 외에 언급되는 문제들은 이렇다. 우선, 남녀의 구분과 남성을 향한 적대적인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 관객이 가장 먼저 영화에서 이탈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다소 잔인한 표현에 불편함을 느껴, 불쾌했던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여기까지도 이해해주려 한다. <언니>에서 다룬 폭력적인 남성의 범죄는 수많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있던 일이며, 안타깝게도 우리는 영화 속의 이야기가 일어날 법한 사회에 살고 있다. 또한, <언니>가 선택한 표현의 수위도 다른 청불 영화에 비해 과한 편아니다. 

이렇게나 이 영화를 위해 변명했지만, 여전히 방어할 수 없는 지점이 남아 다. <언니>의 가장 큰 문제는 안타고니스트들이 찌질하다는 데 있다. 즉, 이 영화의 남성은 찌질했고, 어떤 위압감도 주지 못했다. 성욕에 미친 노인, 대부업자, 정치인까지 영화엔 다양한 계층과 성격을 가진 남성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추한 욕정 외엔 아무런 능력이 없다. 악인으로서 주인공에게 대항할만한 힘이 없고, 카리스마도 없다. 그들이 분노한 순간 내뱉는 무수한 ‘XX년’이라는 대사만이 그들이 가진 특별한 기술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덩치만 발정 난 개, 욕 잘하는 양아치 정도의 안타고니스트로 머문다.



이들은 이시영 앞에 서면,  초라해진다. 이시영의 액션에 쾌감이 있으려면 악인이 맞을 때, ‘후련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초라한 찌질이들이 맞는 데서 얼마나 큰 영화적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설정상으로 당연히 악인이지만, 그들을 더 치밀하고 악랄하게 묘사해 주인공의 펀치력보다 더 강한 놈으로 치켜세웠어야 한다. 하지만 <언니>의 남성들은 하상만(이형철)을 제외하면 병풍 수준이다. 하나의 예로, <아저씨>의 종석(김성오)과 만석(김희원)이 차태식(원빈)에게 맞을 때, <언니>처럼 허무함이 없던 건, 악당들의 캐릭터를 잘 만들어둔 덕이다.


영화에서 악의 처벌은 그 자체만으로 쾌감을 주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감정적 후련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스토리텔링의 역할이다. <언니>는 그 지점에서 너무도 빈약했고, 때문에 액션의 긴장감도 증발한다. 역시, <언니>의 이시영이 보여준 빼어난 액션도 가볍게 소모됐다. 그녀의 주먹엔 혼이 실렸지만, 그 상대가 혼이 없는 인형에 불과했다. 이 찌질한 남성 안타고니스토로 상업적 성공을 기대했다면, 그 기획자가 <언니> 최고의 안타고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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