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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an 25. 2019

[증인] 그들이 진심이 다가가는 방법

Appetizer#125 증인

[증인]에 관한 이야기는 오디오 큐레이팅으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한 감독의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엔 비정한 현실과 그 속에서 아파하는 약자가 있다. 그는 약자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영화로 안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그렇다고 영화가 변화한 현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애초에 사회란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없는 곳이기에 관심이 없는 것만 같다. 대신, 이한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순간엔 그 속의 인물들에게 버텨낼 힘, 그리고 따스함이라는 걸 가진 채 퇴장하게 한다.


<증인>도 이한 감독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더 깊어졌다. 밀도가 높고, 장르적 긴장감은 더 진해졌으며, 더 묵직해진 영화의 힘이 이야기에 빨려들어 가게 한다.


자폐아 소녀와의 소통, 그리고 그녀가 세상 앞에서 증언을 해야 한다는 시놉시스에선 상업 영화로서 예상되는 지점들이 있다. <증언.은 그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편이다. 이한 감독은 여기에 법정 스릴러라는 장르를 가져와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동시에 관객과도 게임을 하는 듯하다. 관객은 그녀의 증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를 시험한다.



자폐아 소녀의 마음을 열어야 하고, 동시에 사건의 진실도 알아야 하는 순호(정우성)를 따라가면 드라마와 스릴러라는 장르를 모두 만날 수 있다. 미궁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 덕에 몰입감도 높다. 단, 여기서 이한 감독의 가장 뛰어난 연출은 어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을 끌어내려 기교와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스릴러적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객을 놀라게 하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MSG를 뺀 다소 건조한 영화다. 대신, 순호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게 하는 몰입감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증인>은 순호가 사건에 빠져들어 갈수록, 그리고 지우(김향기)와 가까워지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았다. 인물을 진득하게 따라가는 카메라의 태도 덕에 영화의 밀도가 높다. 자폐 소녀를 묘사하고, 그녀와 소통을 하는 과정도 카메라는 천천히 응시하고 있다. 이 느린 과정을 놓치지 않고, 순호와 지우의 표정을 잘 담아냈기에 인물들의 변화와 선택에 설득당할 수 있다. 이렇게 <증인>은 인물이 진심에 다가가고, 성장하는 순간을 잘 포착해낸다.



이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건 정우성, 김향기의 연기다. ‘신과함께’ 시리즈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더 확고히 알린 김향기는, <증인>의 자폐 소녀 연기로 연기의 폭을 더 확장했다. 많은 찬사가 쏟아질 것이다. 이 글에선 조금은 덜 언급될지도 모를, 정우성의 연기를 말하고 싶다.


정우성은 의외로 그의 연기를 바라보는 이들의 호불호가 심한 배우다. 개인적으로 <증인>은 근래 그의 연기 중 가장 빛났다.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는 순호의 연기는 감정을 폭발시키던 역할들보다 이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건조한 영화가 점점 촉촉해지듯, 순호도 지우를 만나며 감정의 폭이 넓어진다. 정우성은 그 미세한 변화의 순간을 표현해낸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자신도 인지하는 '잘생김'은 좋든 싫든 그의 첫인상이다.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가장 잘 보이는 것. 그래서 그가 뭔가를 더 보여주려 하는 연기는 몇 배 더 과한 느낌을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오히려 정우성은 그의 아우라를 억누를 때, 자연스러움과 빛을 모두 보여준다. 마치, 이한 감독의 영화들, 그리고 <증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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