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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Feb 01. 2019

[우리가족: 라멘샵] ‘맛’으로 기억되는 순간과 화해

Appetizer#126 우리가족: 라멘샵

[우리가족: 라멘샵]에 관한 이야기를 오디오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어떤 순간은 감각으로 기억된다. 한 곡의 노래에 한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어떤 향기에선 고향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추억을 깨우는 맛도 있다. 따뜻한 미역국에서 유년기의 생일을 기억할 수 있고, 닭죽의 맛에서 군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가족: 라멘샵>(이하 <라멘샵>)은 그런 영화다. 음식을 통해 부재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하려는 청년의 모습을 기록한 영화. 그리고 그가 맛을 찾아 떠도는 여정은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민족의 과거까지 돌아보는 거대한 발걸음이 된다.



<카모메 식당>, <리틀 포레스트>, <심야식당> 등의 일본 음식 영화는 정갈한 음식들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이 영화들은 사연과 함께 등장하는 음식의 요리 과정을 천천히 담아냄으로써, 재료의 시청각적 이미지를 풍성히 담아낸다. 더불어, 완성된 요리의 온기를 공유하며 위로를 구한다. 조리 과정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 덕에 관객은 영화 속 음식을 눈으로 시식하고, 귀로 씹을 수 있다.


<라멘샵>도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세심히 담는다. 하지만, 앞의 영화들과 비교하면 조리 과정에 힘을 덜 준 편이다. 대신, 음식에 얽힌 인물과 시대의 사연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진다. 언급한 영화들과 비교해 닮은 게 있다면, 영화의 속도다. 주인공 마사토(사이토 타쿠미)가 바쿠테 라는 음식, 싱가포르라는 공간, 그리고 그의 가족을 이해하는 과정을 천천히 바라본다. 그저 걷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고, 그가 지나간 공간을 오래 응시함으로써 영화의 분위기에 젖게 한다. 슬로우 푸드 같은 영화로, 카메라와 함께 느긋하게 움직이면서 힐링을 할 여유를 준다.



<라멘샵>은 일본의 라멘을 만드는 마사토가 싱가포르의 바쿠테를 만들며 부모의 과거를 알아가는 이야기다. 일본인 아버지와 싱가포르의 어머니를 둔 마사토의 특별한 이력 덕에, 그가 바쿠테를 만드는 과정은 자신의 뿌리를 쫓는 과정이 된다. 마사토는 그의 어머니가 싱가포르에 두고 온 문제를 음식으로써 풀어내려 한다. 다양한 음식이 한 그릇에 담겨 퓨전 음식이 되듯, <라멘샵>은 마사토의 음식 안으로 모인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쌓였던 앙금마저 풀어내는 음식의 힘에 빠져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마사토가 완성한 라멘과 바쿠테의 퓨전 요리는 가족의 화합을 넘어, 두 민족의 화합을 소망하기도 한다. 싱가포르 감독 ‘에릭 쿠’는 이 영화에 일본과 싱가포르의 역사에 관해서도 깊이 있는 고민을 풀어냈다. 일제 강점기 장시 침략했던 일본인에게 피해를 받았던 싱가포르의 과거와 여전히 상처를 가진 세대의 분노를 포착해냈다.



앞서 말한 공간을 오래 응시하는 <라멘샵>의 연출은 이 영화가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위치와 밀접한 관계라는 점에서 더 적절한 지점이다. <라멘샵>은 최대한 싱가포르와 이 국가의 색채를 많이 담아내야만 했다. 이 영화는 싱가포르 감독의 눈으로 싱가포르의 묵은 감정을 씻어내려 했던 ‘싱가포르’의 영화다. 에릭 쿠 감독은 다민족이 살아가는 싱가포르의 갈등을 외부인이자, 가해자였던 국가의 후손을 통해 공감하게 하고, 두 국가의 음식을 끌어안음으로써 역사적 원한을 풀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신선한 재료와 싱가포르 본연의 맛을 잘 살린 음식 같은 영화 <라멘샵>. 현시대에 만연한 세대와 민족 간의 갈등이 ‘라멘테’(라멘+바쿠테)처럼 따뜻하게 풀리는 순간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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