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09. 2021

[낙원의 밤] 그의 '신세계'가 오면 안 되는 이유

Appetizer#168 낙원의 밤

‘감독은 평생 단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박훈정’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보면, 저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각본을 썼던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연출로서 이름을 알린 <신세계>와 그 이후의 작품까지 그의 작품은 한결같다. <마녀>를 통해 남성의 세계를 탈주하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엔 배신과 복수, 그리고 피비린내는 인장처럼 그의 영화에 새겨져 있었다. <낙원의 밤>도 그랬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컷(출처: 넷플릭스)


여전한 남성 조직의 세계

조직의 세계에서 활약하고 타겟이 되는 주인공은 박훈정 감독의 많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모티브다. 이 조직에 있는 남성들의 역학 관계와 욕망이 뒤섞이며 긴장감을 만든다. 여기에 맛깔나는 대사를 더해 박훈정 감독은 누아르라는 장르를 안정적으로 구축해왔다.


<낙원의 밤>의 태구(엄태구)는 조직의 보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을 처리한 뒤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다. 태구는 조직의 삶에 지쳐있는 듯한 표정과 복수를 향한 분노가 대비되는 캐릭터로 엄태구의 연기가 매력을 더한다. 하지만 결국엔 숱한 누아르에서 보던 클리셰들을 반복하는 평면적인 캐릭터였다. 태구는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브레이크를 걸고, 극의 속도감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공기에 묻히는 듯한 대사들도 몰입에 어려움을 줬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컷(출처: 넷플릭스)


여전한 여성 캐릭터의 판타지

<마녀>에서 박훈정 감독은 극의 중심에 여성 캐릭터를 배치하며 영화적 변신을 시도한다. 그리고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과 개성 있는 주인공을 창조하며 한국 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신선한 시도를 걷어내면 과잉과 엉성한 만듦새가 선명히 보이는 탓에 당시 감독의 관심이 ‘스타일리쉬’한 영상에 있는 게 아닌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낙원의 밤>의 재연(전여빈)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냉소적인 캐릭터로 남성 조직의 세계를 경멸한다. 여기에 총기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특별한 지점도 있다. 드라마 ‘빈센조’에서 활약 중인 전여빈이 이 캐릭터를 맡으며 기대감을 더했다. 덕분에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엔 성공했지만, 영화가 내세운 액션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었다. 범죄물보다는 판타지 액션물, 혹은 전작 <마녀>처럼 연출되어 이 영화에서 홀로 튀는 듯했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컷(출처: 넷플릭스)


그의 '신세계'는 오지 않는다

<낙원의 밤>은 비릿한 조직의 세계가 잘 보이고, 이들이 쓰는 대사도 박훈정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적 재미를 더한다. 그런데도 아쉬웠던 건 주요 캐릭터들이 단순하고, 이미 봤던 걸 다시 보고 있다는 기시감 탓이다. 엄태구, 전여빈과 함께 차승원의 이미지까지 소모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캐릭터들의 상호작용이 잘 안 보이는 클리셰의 영화. <낙원의 밤>은 <신세계>가 사랑받았던 지점과 정 반대에 있는 평범한 누아르였다.


잊을 만 하면 영화 팬들은 <신세계>의 후속작을 향한 기대를 보이고는 한다. 분명 궁금하고 기대되는 영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영화라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와서는 안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천스텔라] '인터스텔라'의 영리하고 재기발랄한 변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