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43 싱 스트리트(2)

지금, 그 미래파 소년은 어디 있을까

Track 2. The Riddle Of The Model, & Girl

코너가 라피나에게 끌린 이유는 과학이라 할만하다. 색을 앗아가는 학교에 의해 색을 상실해가는 코너와 진한 화장으로 강렬한 색을 뿜어내는 라피나. 색을 잃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라피나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피나는 싱 스트리트 밴드의 뮤즈였고, 이 뮤즈는 건조한 아이들에게 색을 선물한다. 그녀는 개성의 상징이고, 싱 스트리트는 이 개성을 포착한 뒤 프레임에 담으면서, 그들 자신을 치유한다. 소년들은 동력을 얻은 것이다. 그들은 하루하루 변하는 다양한 스타일만큼, 다양한 색을 입을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 밴드의 구성원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데, 이 역시 소년 개개인의 정체성 확립과 다양한 개성의 발현, 조화라 할 만하다.


또한, 라피나는 소년을 성장하게 한다. 학교에서는 억압을, 가정에서는 방치된 소년은 좀처럼 변화를 꿈꿀 수 없다. 코너는 라피나 덕에 음악에 몰두하고, 그녀를 위해 밴드를 만들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곡을 쓰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간다. 질투하고, 몰두하고, 아파하고, 더 잘나 보이려 애쓰며 소년은 성장한다. 남과 여라는 사고관의 확장 및 감정의 폭을 라피나 덕에 증폭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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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라피나는 소년에게 아일랜드 탈출을 꿈꾸게 한다. 무채색의 도시가 소년을 병들게 한다면, 흐린 구름 너머로 보이는 런던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다. <싱 스트리트>에서 아일랜드는 시들어 버린 땅이며, 런던은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동경의 공간이었다. 코너의 형 브렌든(잭 레이너)이 절망에 빠져 허덕이는 이유, 코너의 엄마가 현관에 앉아 햇빛을 갈망하는 이유. 이 모두가 아일랜드라는 공간에서 탈출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그들은 병들었고, 코너도 이 땅에 머문다면 그 병이 전염될 것이다. 이들과 달리 라피나는 아일랜드를 떠나 런던에서 빛나는 모델이 되려 하고, 그 꿈이 이 여인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코너가 라피나에게 끌렸다는 것은, 그 탈출의 욕망에도 끌렸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라피나 외에도 그를 아일랜드 밖으로 내보내는 존재는 있다. ‘브랜든’이라는 현재는 코너의 미래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코너는 브랜든이 닦아 놓은 길은 누리기만 했을 뿐이라는 말에 미안함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느낀다. 자신은 변화할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코너는 미래를 위해 뭔가를 시도하려 했고, 배의 키를 잡는다. 그의 어린, 소년성을 대변하는 것만큼이나 작은, 그리고 위태로는 배를 타고 바다로 향한다. 브랜든의 꿈과 밴드의 미래까지 싣고서, 코너의 배는 세상으로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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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3. Drive It Like You Stole It

영화가 선택한 뮤직비디오라는 매개체에 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MTV 세대 라고 불리는 영화 속 소년들은 현란한 카메라 워크, 빠른 편집과 화려한 영상미에 빠져들었던 세대다. 이미지의 범람과 더불어, 세상을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시대.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취향대로 세계를 해체하고 조립한다는 데 있다. 코너는 그런 문화의 최전선에 있던 소년이다. 그런 그가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담은 것은 사랑, 저항, 그리고 그들 밴드의 청년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라피나’를 담기 위해 시작한 뮤직비디오. 이 뮤직비디오는 구애의 언어였고, 라피나의 아름다움, 즉 이상형을 복제하고 소유하려는 시도이자 욕망의 결과물이다. 코너는 그의 사랑을 가사에 담고, 영상으로 물질화시켜 라피나에게 바쳤다. 라피나를 담던 카메라 시선의 주체도 코너의 것이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은 코너가 그린 스토리 보드에 있다. 스토리 보드는 영상의 의도이고, 코너가 보고 싶은 것을 담으려는 시도이자 목적이다. 그리고 이 스토리 보드의 중심엔 늘 라피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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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나를 담는 동시에 싱 스트리트 밴드의 뮤비는 시대를 향한 저항 정신도 포함하고 있다. 이 밴드가 뮤직비디오에 담는 것은 개성적 스타일을 가진 소년들의 색다른 모습이며, 무채색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게 보란 듯 외치는 사자후다. 그들이 입고 싶은 것을 입고,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그들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뮤직비디오. ‘교장, 보고 있나?’


마지막으로, 이 뮤직비디오는 그들 청년기를 박제해 영원히 보존한다. 그들이 음악으로 소통하고, 세상에 시비를 걸고, 그들의 색을 추구했던 시기가 온전히 영상에 기록된다. 그렇게 그들의 소년 성은 영원히 저장된다. 소년들에게 꿈이라던 게 있던 환상적 시간을 담아내고 있다. 존 카니가 이 영화로 보고 싶었던 것도 자신의 청년기가 아닐까 상상하게 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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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니의 미래파 아이들

‘우리는 미래파에요’라는 코너의 대사. 이 미래파 청년이 말한 미래가 2016년 우리의 시대라면 어떨까. 이는 존 카니에게 특별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원스> 이후, <비긴 어게인>은 잘 재련된 영화였으나, <원스>가 보여줬던 그만의 색(어쩌면, 아일랜드라는 지역색)이 바랜 영화였다. 그런 그가 미래파 소년을 소환해 듣고, 보고 싶었던 것 결국 자신의 초심이 아닐까. <싱 스트리트>는 그런 면에서 <원스>와 <비긴 어게인>의 중간 쯤, 그러니까 정-반-합의 과정을 거친 변증법적 영화로 볼 수도 있겠다.


또, <싱 스트리트>는 묻는다. 80년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금, 여러분의 시대는 코너가 살던 우중충한 아일랜드와 얼마나 다른가. 당신들은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는가. 현재는 그 시절 미래파가 그리던 환상적인 시간인가. 폭력과 억압의 시대를 초월해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시대는 도달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코너가 큰 바다로 나가며 끝나버린 ‘열린 결말’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관객 개개인의 현재는 코너의 항해, 즉 ‘미래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에 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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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프 니콜스 감독의 <머드>에서 주인공 머드(매튜 매커너히)도 큰 세상으로 항해를 시작하며 그의 이야기를 닫았다. 여러 가지 갈등을 해결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배의 키를 잡은 머드 앞엔 뜨거운 태양과 거대하고 잔잔한 물이 펼쳐져있다. 광대하면서도 조금은 희망차보이는 미래가 머드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싱 스트리트>의 코너가 대면하는 물은 그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비와 파도가 그와 라피나를 때리고, 잿빛 구름은 그들의 미래에 인상을 쓰고 있다. 그는 무사히 아일랜드를 탈출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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