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성웅 앞에서 방황하는 카메라

Appetizer#190 노량: 죽음의 바다

연말 극장가는 장군들의 이야기가 주목 받고 있다. 12·12사태를 다룬 <서울의 봄>이 한파를 뚫고 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를 담은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대중이 역사에 반응하고 있고, 책임과 본분을 다한 인물에게 환호하고 있다는 건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흥미로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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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장이기에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한국 최다 관객(1,761만 명)을 동원한 <명량>과 비평적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한산: 용의 출현> 이후의 작품이었으니까. 그리고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말(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로도 유명하기에 그 순간이 어떻게 연출될지 궁금한 이들이 많았을 거다.


직접 마주한 <노량>은 다른 것보다 해상 전투의 구현이 인상적이다. 배를 활용한 다양한 전력과 전술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 새롭고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앞선 두 편의 영화에서 얻은 경험과 촬영 및 VFX 기술의 진보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해상 전투를 잘 구현했음에도 여기서 큰 감흥을 느낄 수 없다는 건 흥미로운 반전이다. 당대의 해상 전투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는 달성할 수 있었겠지만, 잇따른 전투 씬의 나열 속에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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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활용한 슬로우 모션은 유독 이야기를 늘어지게 했고, 전투의 강약과 리듬을 만들지도 못했다. 감정적으로 호응해야 할 지점과 긴장을 풀어야 할 지점이 모호해 뒤로 갈수록 피로감을 느꼈고, 영상이 느리게 연출될 때마다 극에서 이탈해 다른 생각을 하며 관람해야 했다. <서울의 봄>이 수려한 편집으로 비전투씬에서도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면, <노량>은 세련되지 못한 편집으로 전투씬의 박진감을 떨어뜨려 매력을 반감시켰다. 전작인 <한산: 용의 출현>에서 봤던 전투씬의 강약조절을 생각한다면 더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한산도 대첩과 노량해전이 보였던 양상의 차이에서 온 것일 거라 추측할 수 있다. <노량>은 김한민 감독의 앞의 두 영화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명량해전과 한산도 대첩이 조선이 처한 위기 속에서 이순신 장군의 불굴의 의지와 신묘한 병법으로 기적같은 승리한 전쟁이었다면, '노량해전'은 전쟁의 승기가 조선으로 기운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전과 달리 <노량>의 화두는 전투의 명분이다. 승패가 결정난 전쟁에서 희생을 줄이자는 진린(정재영)의 입장과 더 큰 화를 막기 위해 더 많은 적을 없애야 한다는 이순신(김윤석)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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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인 원한도 가져왔고, <노량>은 그의 영웅인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을 동시에 조명하며 이 전쟁을 이어가려 하는 이유를 추측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의 어떤 면을 더 부각해야 할지 부담을 가졌고, 어떤 관점으로 말하는 데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다양한 정황을 정보로 제시할 뿐이었다. 명백히 이순신 장군을 중심에 두고서 그를 위주로 전개하는 이야기임에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노량해전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영화 속 카메라가 이순신 장군의 딜레마를 공유할 정도로는 다가가지 못해, 긴 시간 그와 함께하면서도 어떤 거리감을 느껴야 했다.


이런 탓에 이순신 장군이 입체적으로 보일수록 영화의 톤이 모호해졌다. <노량>은 전투의 불가피함과 거기서 오는 희생의 안타까움을 말하기엔 너무 웅장하며 뜨거웠고, 위대한 영웅의 승리와 업적을 말하기엔 비애감이 컸고 차가웠다. 때문에 전투에 이입하지 못한 채 방황했고, 늘어진다는 인상을 받아야 했다. 고증과 기술력으로 빚은 수준 높은 전투씬이 노량해전의 전개 양상을 실감 나게 경험하게 했음에도 전투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노량>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영웅을 재현한 영상으로서 무난했으나 극영화적으로는 아쉬운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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