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때 받았던 상장들을 모아놓고 보면, 은근 개수가 많았던 게 백일장 상이다.
주로 학교에서는 통일, 청렴 등 사회적 주제를 놓고 학생들의 외침을 듣겠다며 백일장을 열었다. 나는 나름 글쓰기를 좋아했던 터라 이런 행사가 있을 때는 어떤 공부보다도 최선을 다해 참여했었다.
문학소년의 기지를 발휘해 출품하고 나면, 역시 결과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어진 학교 생활(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이 반복되니 백일장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됐다. 그러던 어느 평일 오후 종례 시간, 갑자기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신다.
선생님 손에는 웬 상장이 들려 있었는데, 무슨 상장인가 보니 잊고 있었던 백일장 결과였다. 40명 가깝던 반 친구들 앞에서 문학소년임을 인정받는 순간이었기에 지옥의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앞두고도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늘 백일장에서 입상했을 때 받아 든 상장에는 '장려'가 적혀 있었다.
자랑일 수도 있겠지만(맞다) 초등학교 때는 백일장에서 대부분 최우수, 우수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나름 잔뼈가 굵어지던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는 모든 백일장의 결과가 '장려'에 그쳤다.
한 번도 아니고, 6년 내내 어중간한 결과인 장려가 반복되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짜고 치는 트루먼쇼를 촬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쯤은 동상 이상의 결과를 받아 들 법도 한데, 전부 장려상이라니... 물론 장려상도 상이기에 누구는 배부른 소리라며 핀잔을 주겠지만, 막상 겪어보면 나를 약 올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칠 지경이다.
그래도 고등학생 시절, 영겁의 장려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기대했던 적이 한 번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에도 백일장이 열렸는데, 우리 반은 국어 선생님께서 감독관(?)으로 자리하셨었다. 당시 나는 시를 썼었기에 주어진 시간이 꽤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 출품을 마쳤다. 그러면서 '이쯤 하면 됐다'는 생각과 함께 멍한 표정으로 내 시를 복기하고 있었는데, 돌연 선생님께서 교탁 앞으로 나를 부르시는 게 아닌가.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앞으로 나갔는데, 어디서 보고 베낀 게 아니냐는 황당한 질문이 내게 돌아왔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다소 이른 시간에 내 시를 받아 들었다 보니 한 번 읽어보셨던 것 같은데, 심혈을 기울여 쓴 내 작품이 필사 의혹을 받다니. 당시에는 어이가 없고 수치스러웠다.
아무래도 당시에 내 국어 성적이 50~60점대였기에 그런 질문을 하신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당시에는 역시 성적이 낮으면 이런 수모를 겪는구나 생각했다. 이후 1년이 지난 고3 때 그 선생님은 안 계셨지만, 나는 국어 모의고사 100점을 받으면서 혼자만의 복수에 성공했다(선생님의 큰 그림이었을까...?).
물론 선생님으로부터 필사 의혹을 받았을 당시에 마냥 불쾌했던 건 아니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악역을 향해 악플이 달리면 이를 두고 악역 배우를 향한 극찬이라고 평가하지 않는가. 선생님의 의심 또한 극찬이라 생각됐고, 괜스레 뿌듯하면서 결과를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장려상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입상을 목표로 백일장에 최선을 다했었다. 하지만 6년 동안 어중간한 결과가 반복되다 보니 이후로는 자기만족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필사 의혹으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만, 유명세를 원한다기보다 내 삶에 이런 일도 있었다는 책갈피를 꽂아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놈의 장려 히스테리 때문인지 몰라도 브런치 메인에 걸려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얻는 글들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어떻게 글의 소재가 넘쳐나는 다양한 삶을 살아온 것인지 작가분들의 인생 경험치에 더 눈길이 간다. 그렇게 나는 이들 사이에서 어중간한 글을 다시 쓰고 있다.